저작권 개무시하던 시절에 나온 동인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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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부터 1985년까지 활동한 일본의 동인 서클로, 애니메이션 및 특촬 독립영화 제작을 중심으로 한 단체다.
1981년 오사카시에서 개최한 제20회 일본SF대회 DAICON 3를 주최한 사이언스 픽션(SF) 팬들인 대학생 중심의 단체
DAICON 3 실행위원회가 기원으로, 대회 종료 후에도 2년 뒤인
1983년에 다시 한 번 오사카에서 대회를 열기 위한 홍보 목적으로 영화 제작 등의 활동을 이어갔다.
주변 친구들은 다들 대기업에 취직도 하고 자기가 원하는 일을 찾아서 노력하고 있는데, 혼자서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한번 본인이 주연급 리더가 될 수 있는 다이콘 행사(다이콘 4)를 하기로 하고,
애니메이션 제작사 가이낙스를 설립했다. 따라서 몇몇 작품의 저작권은 가이낙스에서 관리한다.
이 작품 제작 전에 안노 히데아키, 아카이 타카미, 야마가 히로유키 3인이 학생 신분으로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제작을 도왔던 인연에서 참여한 것이다.
그 외에도 아카이 타카미의 친구 사다모토 요시유키, 마에다 마히로도 참가.
타카야마 후미히코는 이 작품을 보면서 아카이 타카미에게 "이 장면과 저 장면의 작화가 좋다." 라고 몇 장면을 칭찬했는데
거의 극장판 애니급의 작화가 나왔다. 오카다 토시오의 말에 의하면, 당시
일본 SF 팬덤은 소설, 아니메, 만화, 영화, 특촬 등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따로 놀았는데 서로 갈등도 있고 하던 터라,
SF 컨벤션 다이콘을 통해서 사이좋게 지내자는 바람을 그렸다고 한다.
안노 히데아키 말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루팡 3세 죽음의 날개 알바트로스가 일본 애니메이션 최초의 바스트 모핑이고
자신들은 그것을 따라한 것이라고 한다. 키타쿠보 히로유키 말로는 그 미야자키도 서양 애니메이션을 따라한 것이며
이후 전뇌학원, 프린세스 메이커 시리즈까지 그 화풍이 이어진다.
여러 문제가 있고, 원본도 사라져서 복원 계획이 없다고 했다고 한다.
다이콘 3보다 패러디가 몇 배는 많고 할리우드 작품 패러디도 많아서 협상이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그래서 이건 3와 달리 봉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