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아카)애니 1화에서 마음에 들었던 감정선 묘사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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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1화가 말고 많고 탈도 많은건 아무래도 후반부 클라이맥스가 될 전투씬과 선생의 지휘가 팬들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해서인데...
그건 본인도 마찬가지였지만, 내가 1화에서 주목한 부분은 전투씬보다는 그 이전 아비도스 학원에서의 시로코와 선생의 대화였음.
상당히 많은 감정선을 함유하고 있는 장면들로 가득해서 상당히 신경썼구나 라는걸 느낄수 있었기에.
시로코가 선생님을 데리고 아비도스 학교를 안내해 주면서 현재 아비도스의 상황을 조망하고 있음.
분명 아비도스 학원은 매우 힘든 상황이지만, 그래도 학생들은 최선을 다해서 적의 습격에 대비하고, 자급자족하며 굳세게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줌.
이건 모래가 쌓여 황량한 교정에서 피어나는 꽃을 통한 메타포로 보여주고 있고.
하지만 동시에 교정 곳곳에 쌓여있는 모래들과 비어서 적막한 교정을 조망하면서 학생들이 처한 상황이 녹록치 않음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음.
바로 이 장면, 학생들을 가르치고, 보호해야 할 교사, 선생님, "어른"이 부재하다는 것.
시로코의 입으로 "너무 모래가 쌓여서" 쓸 수 없는 "교무실"
즉 어찌할 도리가 없는 "어른의 부재"라는 것이 지금 아비도스가 처한 가장 힘든 상황이라는 걸 이 장면으로 잘 보여주지.
나름의 방식으로 어떻게든 굳세게 살아가고, 자신이 하고싶은 일들을 해나가며 살아가려는 강한 아이들이지만,
그럼에도 어린 학생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든 상황에 학생들 스스로도 막막하고 지쳐가고 있음을 언뜻언뜻 보여주는것.
인게임에선 시로코의 모모톡 프로필인 "사이클링 파티 모집중" 을 사이클링 동아리 모집중 포스터로 보여주고, 거기에 시로코가 무심코 손을 대는 것으로 학생들이 처한 외로움과 막막함을 보여주고 있는 장면.
그리고 선생은 바로 그 점을 눈치채고, 자신이 할 수 있는걸 이 아이들에게 해주고자 함.
당장 이 학교의 빚을 없애거나 하는 초월자, 구세주로서의 역할은 한낫 가련한 인간 남성인 선생으로선 할 순 없겠지만,
당장 선생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이 아이들이 빼앗겨 버린 당연한 일상,
학교의 교정에서 선생님에게 수업을 듣는 일상을 다시 돌려주는 것.
인게임에서 선생님이 수업을 하는 장면이 그리 많이 나오지 않고(기껏해야 아츠코 인연스토리 정도?) 아비도스 1장에서도 선생님이 수업을 했다는 묘사는 없지만 이 장면을 넣은 것은,
블루 아카이브의 "선생"은 다른 게임의 플레이어(마스터, 지휘관 등)와는 달리, 말 그대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인도해 줄 수 있는 "선생"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 아비도스에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음.
인게임에서는 전투의 지휘관으로서의 묘사가 강할 수밖에 없지만, 사실 본질적으로 샬레의 선생이 하는, 해야만 하는 역할은 바로 이거라는 것.
애니메이션에서 이 부분을 상당히 힘주어서 묘사해서 개인적으로 상당히 놀라고, 또 인상깊은 장면이었음.
그리고 시로코가 선생의 방으로 쓰라고 준 이곳은, 인게임 묘사상 학생회장실이었던거로.
그리고 시로코의 대사,
"좀 좁을까?"
라는 대사에도 많은걸 함축하고 있다고 느껴짐.
그것은 아마도 이제야 의지할만한 선생이 왔다는 것도 잠시, 그런 선생이 자신들의 이 어려움을 함께 나누게 하는게 정말로 옳은 일인지, 자신들이 선생에게 너무 큰 부담을 주고 있는지 머뭇거리고 있는 마음을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함.
그 말을 하는 시로코의 표정도 마치 자신에게 내밀어진 손길을 바라보는 버려진 강아지 같은 표정으로 보임.
"내가 당신에게 의지해도 좋을까요?"
"우리가 선생님의 도움을 바래도 괜찮은 건가요?"
그리고 선생님의 대답.
"그것이 어른이 해야 할 일이니까."
이 장면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님인 Lilac&halo님의 만화에서 나온 이 장면이 떠올랐음.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이 아비도스에 당신의 자리를 두어도 될까요?"
"내가 너희와 같은 자리에 앉아 이 고난을 함께 하리라."
중요한건 선생님은 "구세주"로서 온 것이 아니라는 것.
선생님과 시로코의 시선을 따라 나온 벽에는, 그럼에도 이 아이들은 강하게 지금까지 버텨왔고,
동시에 쇠락해가는 학교를, 나아가 아비도스라는 자치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음을 벽에 붙은 지도와 기록들로 보게 됨.
그리고 여기서, 선생님은 하나의 화두를 던지지.
물론 이 대사가 뒤의 전투씬에서 튀어나옴으로서 웃음벨이 된 거지만, 이 대사는 애니메이션 만의, 선생 만의 새로운 "화두"중 하나라고 봄.
아마 아비도스 학생들이 제일 많이 들었을 거. "괜히 힘들게 이러지 말고 그냥 다른 학교로 전학 가라" "왜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고생을 사서 하고 있나?"
아마 학생들도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며, 처음에 먹은 학교를 지키겠단 마음이 조금씩 깎여나가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을 터.
"내가 왜 이러는 거지" "309년 동안 갚아야 할 빚을 짊어지며, 왜 내 청춘을 이런 황량한 학교에서 보내고 있는 걸까." 순간순간이나마 지치고 힘들어서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
그렇기에 선생은 다시 한번 아이들에게 화두를 던지는거지.
진지하게 자신들의, 학생들의 의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것을 존중하는 자세이니까. 그렇기에 시로코도 이 화두에서 깜짝 놀란 거고.
그리고 학생들이 이 화두를 되새기며 깎여나가던 처음의 마음을 상기하고, 그 마음이 진실로 변치 않다면.
자신은 그 마음에, 학생들의 꿈에 전력으로 응하겠다는 선언 그 자체인것.
나는 이런 함축된 감정선, 어째서 선생이 이 아비도스에 찾아왔는가 라는 이유와 그에 대한 대답.
앞으로 선생은 이 아이들과 함께 무엇을 해 나갈 것인가를 이 장면으로 보여주고 있어서 액션씬 보다도 더 블루 아카이브 본질에 다가서는 잘 만들어진 장면이라고 생각함.
그래서 사실 블아 애니에선 액션씬 보다 이런 선생과 학생의 관계에 대한 밀도 있는 이야기를 더 기대하고 있음.
벌써부터 이 장면이 너무 기대되어서 미칠거 같음..
하지만 그런 속깊은 선생님도 시로시로코의 "응.... 선생님 내가 먼저 상위입찰함. 내가 먼저 마운팅 해둠." 에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는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