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트) 길가메쉬와 시로가 세이버를 대하는 태도 차이
본문
길가메쉬는 당연히 매우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 세이버를 대함.
"세이버가 과거를 잊고 행복해지면 된다"는 명제 자체는 시로와 같지만 길가메쉬는 시로랑 "이유"가 다름.
길가메쉬가 세이버에게 구애하는 이유는 단순히 "자신을 즐겁게 했기 때문".
세이버의 아픔에 공감하거나, 세이버가 구원받기를 바라서가 아님.
단순히 "세이버가 헛된 것을 향해 발버둥치는 모습"이 자기가 보기에 즐거웠고, 거기에 대한 상으로 자신이 "행복"을 내려주겠다는 태도임.
세이버가 과거의 자신을 긍정하거나 하는 요소는 필요없음. 그저 자신이 친히 행복을 하사하고, 세이버는 받으면 된다는 거 뿐임.
그리고 그것이 세이버에게도 "구원"이 되리라 생각하고.
반면 시로는 세이버의 아픔에 공감하고, 세이버의 구원에 집착함.
세이버의 인생 자체를 긍정해주고, 세이버 자신도 스스로의 인생을 긍정해주길 바라고 대함.
길가메쉬와 비교하면 "세이버의 행복"에 대해 과거를 털어내야 한다는 부분은 같지만, 그 과정에서 큰 차이가 있는 셈.
당연히 너무 상처입고 지쳐있던 세이버에게 이런 시로의 원론적인 말도 대부분 닿지 않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세이버는 "에미야 시로가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것을 보며 생각을 고쳐먹게 됨.
세이버의 입장에선 시로는 어린 나이에 같은 상처를 품어버린, 마땅히 자신과 같은 소원을 바라야 하는 애처로운 소년이었거든.
아무튼 정리하자면,
시로와 길가메쉬는 "세이버는 과거에 대한 망집을 내려놓고 행복해져야 한다"는 결론은 같지만,
그 망집을 내려놓는 과정에서 엄청난 차이가 발생함.
길가메쉬는 세이버의 의견이나 생각, 고뇌들은 그저 "보고 즐기는 요소"에 불과하게 여기니까 길가메쉬가 세이버한테 까일 수밖에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