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의 중요성.man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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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명작을 남기고 애니메이션 업계에 한 획을 긋기도 하고 슬럼프에 빠졌다가 부활하기도 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보내다
1989년 2월 9일 위암으로 인해 향년 6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유언은 "부탁이니까 일하게 해줘(頼むから仕事させてくれ…)"였다고 한다.
문자 그대로 평생 현역. 죽기 3주 전까지 일기에 자신의 몸 상태나 신작의 아이디어를 적었다고 한다.
(당시에 심한 위장병으로 고생했는데 일에 집중한 나머지 결국 치료시기를 놓쳐
위를 거의 다 잘라내다시피 했는데도 이미 암이 몸 전체에 퍼지는 말기에 도달한 상태였다.)
누나의 죽음으로 우울증 비슷한 증상을 가지게 된 그는 기분전환도 할 겸 세계일주 여행을 하고 싶다고 마음을 먹었다.
출판사에게 미리 원고료를 땡겨받는 형식으로 여행 자금을 조달하고,
출판사의 취재 기자 신분으로 탐사보도를 한다는 식으로 비자를 얻어서
당시로서는 해외 여행이 힘들던 시절에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견문을 넓혔다.
이 여행 중에 우연히 보게 된 잡지 LIFE의 기사에서 사이보그라는 낱말을 알게 되고,
세계 일주 체험에서 여러 국적의 인물을 등장시킨 사이보그 009 아이디어를 착안했다.
1964년 7월부터 연재를 시작한 사이보그 009는 그의 대표 인기작이자 인생작이 되었다.
1965년 그가 쓴 "만화가 입문"과 후속작 "속 · 만화가 입문" 등은 세부적인 만화 기술론에서 부터
스토리 구상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작성된 당시엔 무척 획기적인 만화가 입문서로 수 년간 만화가 지망생들한테 바이블 역할을 했다.
특히 단편 <용신늪>은 잡지에 게재한 원고를 다시 싣고 직접 해설을 달았는데,
그 뛰어난 연출은 이 만화를 읽고 만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고백하는 유명 여성 만화가(타케미야 케이코 등)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만화가가 많다(하기오 모토 등).
1967년부터 1971년까지 데즈카 오사무가 창간한 만화 잡지 COM에 연재한 옴니버스 단편 연재작
《쥰, 환타지 월드》는 대사가 거의 없고 실험적이고 예술적인 다양한 그림만으로 표현해서 일본 만화의 새로운 가능성의 영역을 연 작품으로
높이 평가받는다. 치바 테츠야는 무척 좋아하는 작품이라며, 이 작품의 영향으로 만화에
계절 묘사과 생활 감각을 의식해서 그리게 되었다고 밝혔다.
1971년엔 가면라이더의 원작 만화를 그렸으며, 프로그램 기획 과정에 설정들과 캐릭터 디자인을 만들어내었다.
이런 가면라이더의 성공을 계기로 토에이 특촬들의 원작을 맡기도 했다.
1981년엔 일본 만화가 협회의 이사를 맡았으며, 4년 뒤 만화가 데뷔 30주년을 계기로 이름을 지금의 이시노모리 쇼타로로 개명했다.
1998년 1월 28일 세상을 떠났는데, 사인은 심장마비, 1992년에 림프종 진단을 받아 일을 쉬었고, 60번째 생일을 맞은지 정확히 3일 후였다.
고령의 나이에도 체력 유지를 위한 운동도 많이 했고 가족도 팬도 당연히 100살을 넘어 장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후 2013년 자신의 첫 전집 인 "미즈키 시게루 만화 대전집"이 코단샤에서 발행된다.
같은 해에는 자신의 근황을 담은 만화 "나의 일상"의 잡지 연재를 "빅 코믹" 잡지에서 시작한다.
91세의 나이로 새로운 연재를 시작하는 이례적인 기록이자 대단한 기록이다.
나의 일상은 미즈키의 삶을 되돌아보는 에세이 만화로, 2015년 5월 연재 종료를 맞이할 때까지,
평온한 일상에서, 전쟁 체험, 가난한 생활, 대본과 그림 연극까지,
과거 에세이 등으로 이야기된 에피소드를 모두 그렸다. 전 34화로 그의 유작이다.
2014년 말에 심근경색이 발병하여 약 2개월 입원한다.
집으로 돌아와 잠시 외출은 휠체어에 의지하게 되었지만, 요괴를 비롯한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믿음과 기력은 시들해지지 않았다.
변함없이 식욕도 왕성하고, 회복을 향해서 요양을 계속했다.
신화 속의 괴물들을 인간화하고 인간적인 면을 해부하는 재능을 가진 영향력 있고
널리 인기 있는 일본 만화가 미즈키 시게루가 월요일 이곳에서 사망했다. (중략)
그러나 미즈키씨는 또한 그래픽 형태로 심각한 주제들을 다루었는데,
이 중에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겪은 자신의 참혹한 전투 경험과 아돌프 히틀러의 급부상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의 삶은 영화와 호평을 받은 자전적 작품들의 주제였다. 일본만큼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가득 찬 나라에서도,
상업적인 성공이나 독특한 특징에서 미즈키씨와 견줄 만한 예술가는 거의 없었다.
그는 아마 아톰의 창시자이자 아마 일본에서 가장 찬사를 받은 애니메이션 제작자인 데즈카 오사무와 함께 나란히 한다.
— 뉴욕 타임스#
2015년 11월 11일, 자택에서 넘어져 머리를 다쳐 수술을 받고 입원치료를 받던 도중 건강이 급속히 약화되어 2015년 11월 30일 새벽,
다발성 장기 부전으로 영면하였다. 향년 93세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한다. 간병한 가족의 말로는, 평온한 잠자리에 드는 듯한 최후였다고 한다.
하룻밤이 지난 12월 1일에는 미즈키 시게루의 자택이 있는 도쿄도 쵸후시에 많은 팬이 방문하여,
키타로 동상에 꽃다발을 올리기도 했으며 미즈키의 출신지 돗토리현 사카이미나토시의
미즈키 시게루 기념관 앞에서도 이날 주민들이 꽃을 바쳤다.
이른바 "수면은 모든것의 원천"이라는 인생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 만화가 중에서는 드물게 수면시간을 충분히 유지하는 만화가였다.
아무리 바빠도 10시간 이상을 잤다고 한다. 말년에는 12시간 이상 잤다고.
그래서 2쪽 단편 만화 "수면의 힘"의 내용으론 데즈카 오사무와 이시노모리 쇼타로가
어느 출판사에서 그를 만났을 때 철야 작업 진행 중임을 알리자
자신이 수면시간에 의한 수명 연장을 설파해 경고하기도 했다고.
참조 1970년대 전성기 시절 매우 바빴을 때는 밤을 새가며 작업한 것 때문에 현기증과 이명 증상이 나타났었다고 한다.
미즈키 시게루는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 수상 연설에서 "자신보다 연하인 데즈카 오사무와 이시노모리 쇼타로는 잠을 안자고
야간 작업만 계속했기 때문에 요절했다"라고 연설에서 말했다.
미즈키 시게루와 마찬가지로 장수 만화가로 알려진 날아라 호빵맨의 작가이자 선배 작가 야나세 타카시도
미즈키의 수면을 많이해야 장수한다는 지론에 찬성하기도 했다. 야나세 타카시 역시 향년 94세의 나이로 사망하며 장수한 만화가의 아이콘이었다.
잠에 집착심이 강하다고 말했다. 유소년기에도 일어나는 것이 서툴러, 항상 등교시에는 학교에 없고,
2교시 정도부터 등교하고 있었다. 말년에도 그 생활 사이클은 변함 없이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10시 이후이며,
아침 드라마 "게게게의 여보" 방영시, NHK 직후의 프로그램 "아사이치"에서 생방송으로 미즈키 부부에 대한 인터뷰하러 왔을 때도
마이 페이스에 잠들어 있어, 아내인 무라 부인만이 코멘트를 하는 상황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다만, 이 인터뷰는 처음부터 무라 누노에 부인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어날 필요가 없었다.
- 장수 집안이다. 아버지는 향년 88세, 어머니는 향년 94세, 형은 향년 97세였으며 동생은 2021년 4월 8일 97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배우자 역시 현재 89세로 건강하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