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자들]: 학생과 문화
본문
저자 - 피에르 부르디외, 장클로드 파스롱
번역 - 이상길
출판사 - 후마니타스
쪽수 - 288쪽
가격 - 18,000원 (정가)
● ‘상속자’와 ‘장학생’, ‘재능’과 ‘노력’이라는 구분, 그리고 능력주의의 허상을 파고든 혁명적 사회학
● 학교, 교육체계, 계급, 세습, 문화적 유산, 불평등을 둘러싼 논쟁을 촉발하며 “한 세대 전체에 의해 읽혔고, 정치의 하늘에 번쩍인 불벼락” 같은 영향을 끼친 비판 사회과학의 명저
● 68혁명의 기폭제가 된, 좌우파 학생 모두의 “베갯머리 책”
● 사회학과가 사라져 가는 한국 사회에서 부르디외 사회학 읽기
●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아니 에르노의 첫 작품 『빈 옷장』에 영감을 준 책
1. 교육 기회와 성취의 불평등을 비판적으로 분석해 혁명을 촉발한, 비판 사회과학의 현대적 고전
부르디외의 『상속자들』은 내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나는 그 책을 통해, 내가 속한 사회적 환경과 내 가족이 겪었던 문화적 빈곤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자라면서 느꼈던, 그리고 오랫동안 의식하지 못했던 갈등과 결핍을 명확하게 해석하는 열쇠가 되었다.
- 아니 에르노
어차피 사회에 지배 엘리트가 있어야 한다면 그 내부에서 계속 충원되는 편이 그들의 양성에 필요한 경제적,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는 길일 텐데, 과연 ‘교육 민주화’ 정책에 어떤 이점이 있는지 모르겠다.
- 레몽 아롱
1964년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와 장클로드 파스롱이 함께 저술한 『상속자들』은 유럽사회학연구소에서 수행한 여러 연구와 공식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1960년대 프랑스의 교육체계와 학생들의 사회적 위치에 대해 분석한 책이다. 파리 고등사범학교 출신의 동갑내기인 저자들은 당시 30대 초반의 신진 연구자였다. 학생들의 교육 기회와 성취의 불평등을 통계적, 인류학적으로 접근해 세밀하게 드러냈고, 교육이 사회적 재생산의 도구로 작용하는 과정을 파고듦으로써 출간 당시부터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68년 5월의 학생 운동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도 유명하다. 교육체계와 사회적 계층 간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분석함으로써, 68혁명 당시 학생들이 겪고 있던 불만과 모순을 명확히 포착했기 때문이다. 두 저자의 박사과정 지도 교수였던 레몽 아롱조차, 『상속자들』의 내용과 분석에 적대적이었음에도, 이 책이 좌우파를 막론하고 학생들이 가까이 두고 읽는 “베갯머리 책”이 되었다고 인정할 정도였다.
1989년 부르디외는 이 책의 정치적 의의를 다음과 같은 말로 자평하기도 했다. “한 세대 전체에 의해 읽혔고, 정치의 하늘에 번쩍인 불벼락”과도 같았다고. 적어도 정치적 영향력이라는 면에서 『상속자들』은 비판 사회과학에 기대할 수 있는 최상의 성과를 낸 저작이었다. 여기에는 특유의 예리한 해석과 비평, 나아가 이를 뒷받침하는 개성적이고 풍자적인 수사학이 중요한 매력을 이룬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자기 학생들에게 지극한 관심과 주의를 기울인 신참 교수들이었던 부르디외와 파스롱은 통계자료에 바탕을 두면서도 이를 뛰어넘는 놀라운 직관력을 발휘했고, 통계 분석과 인류학적 기술을 결합한 독특한 스타일은 여러 종류의 자료와 현장을 다루며 다양한 층위의 독자들에게 말을 거는 효과를 낳았다. 조건부확률 계산과 통계표 분석에 익숙한 독자가 아니더라도, 학생들의 생생한 인터뷰 내용, 또는 학생 조건에 관한 풍부한 서술과 해석을 통해 이 책에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상속자들』은 전문 사회학 저서이면서 학교, 계급, 재능과 노력, 세습되는 문화적 유산, 불평등과 같은 영원한 난제를 정면으로 끌어안으며 교육 문제를 다룬 한 편의 비판적 에세이로도 꾸준히 읽혀 왔고 숱한 사상가와 작가에게 영감을 주었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을 견디고 지금껏 살아남아 20세기 인문사회과학의 대표적인 성과 중 하나로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2. ‘상속자’와 ‘장학생’을 구분하는 ‘문화적 유산’ 개념을 통해 파고든 능력주의의 허상
아이들이 가정환경으로부터 물려받는 문화적 유산이 매우 불평등하기에, 상속받지 못한 아이들에게 다른 아이들이 상속받은 것을 획득할 수 있는 실질적 수단을 학교가 제공하지 않는 한, 문화 앞에서의 불평등은 영속할 것이다.
- 피에르 부르디외, 1966년 3월 ‘마르크스 사상 주간’ 강연
강력한 집단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오마하족] 젊은이들은 고독 속에서 은거하고 단식하다가 되돌아와서 그들이 본 환영(vision)을 어른들에게 이야기해야 했다. 그런데 그들이 엘리트 가문의 구성원이 아닌 경우에, 그들의 환영은 진정한 것이 아니라는 선언을 듣게 되었다.
- 마거릿 미드, 『문화적 진화에서의 연속성』
“내 실력은 오로지 내 노력으로 얻어낸 것”이라고 여기는 능력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의 관심은 ‘공정한’ 시험과 경쟁이 보장되는지에 쏠린다. 그리고 과연 모두가 동일 선상에서 출발하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는 간과되거나 어찌할 바 없는 것으로 치부된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된 1960년대 프랑스에도 능력주의가 부상하고 있었다. 교육 기회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열려 있는 만큼, 개인의 성공은 타고난 재능과 자유로운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는 주장이 퍼져 갔고, 이는 노동계급의 소득 증가와 매스미디어의 활발한 보급으로 계급 간 경제적, 문화적 격차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는 통계로 뒷받침됐다.
19세기 이래 발자크나 스탕달 같은 작가들이 초창기 교육제도의 사회적 효과를 형상화하며 귀족이나 부르주아지 출신과 (명석하지만) 가난한 집안 출신을 대비한 이래, ‘상속자’ 대 ‘장학생’이라는 구도는 오랜 문학적 전통이 되었다. 제목에서부터 이런 구도를 연상시키는 『상속자들』은 이 책에서 비판적으로 겨냥하는 ‘상속’의 요체가 ‘경제적 유산’이 아니라 이른바 ‘문화적 유산’에 있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다. 언어 능력과 예술 취향, 교양 지식 등이 문화적 유산을 구성하며, 이는 가정에서 일어나는 미시적인 상호작용과 일상적인 학습을 통해 부지불식간에 전수된다. 부르디외와 파스롱은 교육체계가 문화적 유산의 상속자들을 선호하고 대학생으로 선별해 낸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 가정에서 물려받은 모종의 자질을 ‘자연적 재능’으로 간주하게 만들면서 학교는 계급적 차이를 학업적 차이로 변환한다.
‘상속자들’을 그저 ‘타고난 능력자들’인 양 변신시키는 재능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 중심의 사회질서를 정당화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것은 외양상 중립적 기구인 학교를 통한 학위 취득이 사회적 특권에 접근하기 위한 열쇠를 제공하는 ‘능력주의 사회’에서 한층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학교, 나아가 교육제도는 문화자본의 불평등한 분포를 재생산하며, 따라서 사회 공간의 기존 구조를 재생산하는 데 결정적으로 이바지한다. 그것은 사회구조뿐만 아니라 정신 구조를 재생산하는 데에도 핵심 역할을 한다. 이런 맥락에서 교육사회학은 부르디외가 구상한 비판 사회과학의 토대를 이루며, 『상속자들』은 바로 그 토대의 토대를 마련한 저작이다.
3. 사회학과가 사라져 가는 한국 사회에서 부르디외 사회학을 읽는다는 것
『상속자들』은 다양한 사회학적 전통이 한 권의 책 안에서 어우러진 향연이기도 하다. 뒤르켐, 베버, 마르크스 등의 고전 이론가들을 창조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종합한다. 뒤르켐처럼 교육제도의 기능을 중시하고 마르크스처럼 계급 재생산을 문제화하면서도, 뒤르켐과 달리 학교를 사회 통합의 기구로 보지 않고 또 마르크스와 달리 경제적 상속보다 문화적 상속에 주목하는 식이다. 여기에 권력의 정당화에 대한 베버의 이론적 통찰과 이념형적 방법론이 더해지는데, 흥미롭게도 이 모든 이용과 조합 과정에서 (불필요한 상징적 권위를 행사할 위험이 있는) 고전 이론가들의 이름은 최대한 절제되어 나타난다. 바질 번스타인의 언어사회학, 리처드 호가트의 노동계급 문화 연구,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 같은 영미권의 지적 자원을 바탕으로 한 경험 연구는 ‘숨겨진 지배 논리의 발견과 폭로’라는 계몽주의적 비판을 지향했다. 이는 사회학 담론 자체의 지향과 한계를 끊임없는 지식사회학적 성찰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새로운 면모를 지녔다. 부르디외는 『상속자들』의 영역본에 부친 서문에서 “이 책의 중요한 미덕은 사회과학의 전통과 분과 학문들이 떼어 놓고 사유하는 경향이 있던 사회 세계의 면모들, 이를테면 학교에서의 중도 탈락에 대한 분석과 교육체계의 기능과 작용에 대한 분석이라든가, 학교 언어와 문화의 차별적 수용에 대한 분석과 계급 문화에 대한 분석 같은 것들을 한데 묶어 보려 한 시도”에 있다고 말한다. 궁극적으로 그것은 “교육사회학의 지배적 전통과 단절하고, 사회 재생산의 한 차원으로서 문화 재생산의 사회학을 연구하기 위한 프로그램의 초안을 잡으려는 목표”를 지향했다.
이처럼 분석과 비판이라는 사회학의 본령에 충실했던 저자들이 처음부터 사회학으로 학문적 여정을 시작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할 만하다. 프랑스 최고의 수재들이 모인다는 고등사범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어렵기로 이름난 교수자격시험(아그레가시옹)에 합격한 저자들은 철학사의 난제와 대결하거나 ‘인간’이나 ‘세계’의 심원한 비밀을 밝히는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주제의 ‘고상한’ 책을 펴낼 것이라는 세간의 기대를 여지없이 배반했다. 『상속자들』은 1960년대 초 프랑스에서 아직 제대로 분화하지 않았던 교육사회학 영역의 전문적 논의로, 철학적 ‘고담준론’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멀다. 190쪽 분량인 원서에서 자료 중심의 부록만 60여 쪽에 달하며, 본문에도 적지 않은 각종 통계표와 설문 조사 결과, 인터뷰 발췌문 등이 실려 있다(릴 대학 사회학과 학생으로 조사 작업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던 사회학자 이베트 델소가 나중에 “그런 자료들에서도 제대로 된 책이 나올 수 있구나” 하고 내심 놀랐다는 고백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부르디외는 알제리에서 장교로 복무하던 시절 식민지 주민들의 참상에 큰 충격을 받고, 철학에서 인류학으로 전향한 뒤, 프랑스에 돌아와서는 사회학자가 되었는데, 이런 학문적 방향 전환의 배경에는 “사회적 고통, 그리고 살아갈 이유 앞에서의 [계급 간] 극심한 불평등”에 대한 첨예한 비판 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올해 대구대학교에서는 45년간 명맥을 이어온 사회학과의 폐과가 결정되었고, 이에 사회학과 학생들과 교수들이 사회학과의 가치를 재조명한다는 취지에서 추모 형식의 학술제를 열기도 했다. 입학생이 미달해 취업에 유리한 실용 학문 위주로 학과 체제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사회학과의 소멸은, 그저 하나의 학과가 사라지는 데 그치지 않는다. 『상속자들』이 그러하듯 사회현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분석하고, 쉬이 드러나지 않는 ‘사회적인 힘’을 비판적으로 규명하는 사회학 연구는 사회를 비추어 보는 거울이다. 교육체계의 본질을 드러낸 비판 사회과학의 현대적 고전이, 교육과정 자체가 사라져 가는 시대에 저마다의 자리에서 새롭게, 또는 달리 읽히기를 기대한다.
목 차
- 책 머리에 7
1장 선택받은 자들의 선별 9
2장 진지한 게임과 진지한 것을 둘러싼 게임 61
3장 수련생 혹은 마법사의 제자 115
결론 145
부록
I. 프랑스의 대학생 167
II. 몇 가지 자료와 조사 결과 193
참고 사항 231
옮긴이 해제 237
옮긴이의 말 276
찾아보기 278
추 천 사
난 소리 없는 분노와 고통으로 괴로웠다. 그리고 곧 1968년 5월의 사건들이 일어났다.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 제기가 이어졌고, 그중에는 학교에 관한 것도 있었다. 그즈음 『상속자들』을 읽었다. … 나의 출신 환경과의 찢김에 관해 글을 쓰겠다는 욕망이 강박관념이 된 건 그때부터였다. … 우리는 많은 것을, 때로는 아주 오래된 것들을 뒤죽박죽 느끼면서 살아가고, 그러다가 그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내가 느낀 것에 관해 말해 주는 책을 만나게 된다. 내게는 1971년에 발견한 『상속자들』이 바로 그런 책이었다. … 내게 이 책은 내밀성의 차원이든 물리적인 차원이든 그 어떤 어려움에 부딪히더라도 글을 쓰라는 지령으로 작용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 아니 에르노
『상속자들』에서 피에르 부르디외와 장클로드 파스롱은 1964년 당대의 고등교육 제도에서 작동하는 사회질서 정당화 메커니즘을 분석했다. 소외 계층은 인정받을 수 있는 코드와 비결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능력’과 ‘재능’을 가장한 사회적 특권이 영속화된다는 것이다. … 교육 불평등과 능력주의적인 위선이라는 이 문제는 1960년대 이후로 더 중요해졌다. 고등교육은 상당히 확대되었지만 여전히 매우 계층화되어 있고 불공정하며, 자원이 실제로 누구에게 할당되는가의 문제와 교육에 대한 평등한 접근을 실현할 교육 방법의 개혁이라는 문제는 그 누구도 진지하게 제기하지 않았다.
- 토마 피케티
부르디외는 교육을 통해 사회의 경제적, 문화적 자본이 어떻게 세습되는지를 드러낸다. 그가 제시한 ‘문화적 자본’ 개념은 우리가 사회 내에서 경험하는 불평등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를 제공한다.
- 장 보드리야르
부르디외는 교육이 사회 내에서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기계적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상속자들』에서 제시한 연구 방법론은 우리의 사회적 현실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기여를 한다. 그의 작업은 교육 연구뿐만 아니라, 사회학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쳤다.
- 위르겐 하버마스
『상속자들』은 단순히 교육에 관한 것이 아니라, 현대사회에서 권력과 지식이 어떻게 결합되는지를 보여 주는 중요한 작업이다. 부르디외와 파스롱은 교육이라는 시스템이 개인의 위치를 어떻게 결정짓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 미셸 푸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