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너럴 셔먼호 사건과 신미양요가 햇갈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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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너럴 셔먼호 사건(1866)
신미양요(1871)
한국사 시험에 단골로 나오는 근현대사 문제 제너럴 셔먼호 사건, 병인양요, 신미양요의 순서에서 가장 햇갈리게 하는 것이 제너럴 셔먼호 사건~신미양요 사이의 시간이다. 특히나 5년씩이나 늦게 나와서 수험생들 머리를 싸매게 한다.
사실 이는 미국이 남북전쟁(1861~1865)의 여파를 수습한지 얼마 안된 혼란의 시기였는데다, 그마저도 아직 내전의 여파가 다 아물지 않아서 미국 내부에서도 "그 재수없는 셔먼 새끼의 이름을 건 배가 잘 뒤졌네" 라며 축제(...)가 일어났었기 때문이다.
미국 입장에선 극동의 나라에서 일어난 "사소한" 찐빠를 조사하기도 힘들었으니, 사건 파악만 약 3년이나 걸렸다. 오히려 병인박해로 바로 피해를 알고 보복을 한 프랑스가 특이하다면 특이하다고 볼 수 있다. 사실, 그럴수 밖에 없는게 당시 미국이 조선을 조사하려면 미국<>청<>조선 3번이나 거쳐야 했으며 거기다 미국에선 대아시아 외교보다 대러시아 외교가 더 중요했었다. 앞서 말한 혼란한 미국 정세 수습까지 더해지니 5년씩이나 늦어졌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