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봉요원 26권 용상에 손을 얹는 두 사람, 유비와 원술. 1
본문
화봉요원 26권의 내용이다.
원술을 패퇴시키고 난 후의 전장. 여기엔 원술이 직접 만든 용상 또한 남아있다.
유비군은 원술을 추격하지 않고, 대신 전장에 남아 뒷처리에 전념한다. 미축은 이런 "인덕(仁德)"을 베푸는 행태에 완전히 뚜껑이 열리고 만다. 유비의 도덕적 만족감을 채우기 위해 부하들이 피흘리고, 심지어 서주까지 넘겨준 것은 그나마 참아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미 다 잡은 먹잇감인 원술을 굳이 보내주는 것은 너무하지 않은가. 다른 군웅들이 더 많은 공로를 차지하기 위해 너도나도 원술을 치는데, 왜 우리는 여기서 뒷처리나 해야하는가.
그렇기에 미축은 자신이 악역을 자처하며, 유감스런 속내를 털어놓음과 동시에 유비를 추궁한다.
유비는 "신의를 저버리는 것"을 꺼려했다. 이런 과한 도덕적 결벽증 때문에, 뒤통수 치고 서주를 홀라당 삼킨 여포를 감히 어쩌지 못한다. 오히려 도덕적 강박에 얽매여 여포에와 힘을 합치는 노릇까지 할 지경이다.
그래서 미축은 자신이 나서서 명분을 제공하며, 그의 도덕적 강박을 해소시킨다. 도덕 운운하기 이전에, 받은 대로 돌려준다는 게 뭐가 그리 큰 문제냐는 것이다. 여포도 우리를 배신하고 서주를 뺏었는데, 우리라고 여포가 빈집일 때 뒤통수를 쳐서 서주를 뺏는 게 정당하다는 것이다.
또한 서주의 옛 부하들이 열성적으로 당신을 따르는 이유를 상기하라며, 군주로서의 책임을 묻기도 한다.
또한 여기서 나온 미축의 말,물귀원주(物歸原主)에 대해서도 기억해두어야 할 것이다.
미축 : 再說 物歸原主 天經地義
물건이 원래 주인에게 돌아가는 것은, 천경지의
미축은 배신같은 "짐승같은 행위"를, 한 사람(여포)에서 사회전체로 확장시킨다. 비단 여포가 특이한 인물이 아니라, 애초에 세상 사람 모두가 짐승처럼 굴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물로, 미축은 원술이 제작한 용상을 가리킨다.
사세삼공의 명문가 출신도, 이따위 용상이나 지어댄다. 그의 가문도 충의를 저버린지 오래다. 더욱이 천자는 조조의 꼭두각시가 되었다.
지금의 천하는 야심가들이 뛰어노는 사냥터가 되었는데 왜 주공만 주저하며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하는가? 세상의 작태가 그럴진데 왜 당신은 힘들게 사람인척 하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힘들게 노력해보았자 짐승들 밖에 없는 세상에서 누가 알아주느냐고 되묻는다.
유교적 이상주의 따위, 눈앞의 약육강식 앞에선 아무런 목소리도 낼 수 없음을 통렬히 고한다.
미축은 자신의 논리를 중도에 멈추지 않고 끝까지 밀고나간다. 그는 "도덕" 자체가 짐승들이 멋대로 주무른 것이라 쐐기를 박는다.
당신이 그렇게 신봉하는 사서 속의 "도덕과 명분"은 승리한 패주(覇主)들이 자신의 얼굴에 금칠하기 위해 꾸며낸 것에 불과하다. 당신이 그리도 숭상하는 도덕이라는 개념이 승자의 화장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
도덕도 다른 사람 손에 좌지우지 되는 것일진데, "승자는 왕이 되고, 패자는 도적이 된다"라는 말처럼 착한 척하다가 망하지 말고, 일단 이긴 다음에나 착한 척하라는 소리다.
미축은 유비의 도덕적 강박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현실적인 작태로 시작하여, "도덕 자체가 쓸모없다"는 충격적인 마무리로 끝난 미축의 이야기.
그런데 유비는 미축의 공격을 받고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는 천천히 용상 위로 오른다. 원술이 만들었던 그 용상위로. 여기서 용상은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천하"를 상징하는 매개체다.
여기서 미축의 대사 물귀원주(物歸原主 - 물건이 원 주인에게 돌아간다)를 살펴보아야 한다. 미축이 위 구절을 꺼낸 까닭은 그에게 난세의 현실을 일깨움과 동시에 여포가 밖에 나간 사이 서주를 치자는 격려였다.
하지만 이런 물귀원주(物歸原主)는 용상과 결합하면서, 유비와 원술을 구분짓는 강력한 장치로 새롭게 작용한다.
용상의 제작자는 분명 원술이다. 황제가 된 그는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남들을 찍어누르기 위한 수단으로 용상을 제작했다. "황제가 쓰는 브랜드"를 만든다면 "황제가 부리는 권력"은 자연히 따라올 것이라 보았다. 옥새를 집요하게 노렸던 것 역시 그 일환이고.
그러나 원술이 정작 의자에 앉았을 땐, 팔이 짧아 양 팔걸이에 손이 닿지 않았다. 팔이 닿지 않아 허우적거리는 모습은 그가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황제라는 거대한 무게를 감당할 그릇이 아님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의 능력과 기량이 자신의 야망(용상의 크기)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의자를 크게 만들수록 역설적으로 거기에 앉은 원술의 체구는 더 왜소해 보인다. 원술의 용상은, 그 자리에 앉은 주인을 불편하게 만드는 흉물이다.
그리고 원술은, 자신이 만든 용상을 전장에 내팽개치고 도망친다. 제작자가 물건을 감당못한 것이자, 물건이 주인을 떠난 것이리라.
바로 여기서 물귀원주(物歸原主)의 논리가 작동한다.
유비는 원술이 만든 용상을 전장에서 우연히 줍는다. 유비는 용상의 제작자도 아니요, 돈을 지불하고 산 구매자도 아니다. 그저 지나가다가 우연히 손에 넣은 발견자일 뿐이다.
하지만 미축의 말했던 대로 물귀원주(物歸原主), 물건은 그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마치 이 자리는 당신을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는 암시처럼. 용상이 유비를 위해 예비된 것마냥 말이다.
원술은 내가 용상을 만들었으니 내 것(제작자가 곧 주인)이라 주장하지만 물귀원주(物歸原主)에서 말하는 "원 주인(原主)"은 단순히 물건을 소유한 자를 뜻하지 않는다. 소유와 자격은 다르다. 천하(=용상)라는 물건은 분수를 모르고 억지로 만드는 자(원술)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품을 수 있는 사람(유비)에게 돌아간다.
유비는 삼국지연의에서 나온 특징- 수수과슬(垂手過膝, 손이 무릎에 닿을 정도로 길다)대로 양 팔이 양쪽 팔걸이에 "자연스럽게" 안착한다. 원술처럼 힘을 들여 애써 뻗은 것이 아니다. 그저 가볍게 뻗었을 뿐인데 의자가 그를 받아들인 듯한 형국이다.
이것이 바로 물귀원주(物歸原主)이자 천명(天命)임을 시사한다. 또한 물귀원주(物歸原主)의 논리에 비추어 볼때, 원술은 유비라는 "진짜 주인"에게 용상을 전달해준 운반책에 불과했음을 조롱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의자(용상)가 있기에 나한테 권력이 있는 것이다"가 원술의 착각이었다면,
"내가 권력이 있기에 이 의자(용상)가 의미있는 것이다"가 유비의 각성인 것이다.
천하라는 용상은, 원술에게는 감당못할 대상이었지만 유비에게는 편안한 현실이었던 것.
허나 유비는 이 의자를 뜬금없이 처리하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