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봉요원 622화 잡설
본문
1.
화봉요원을 오래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화봉요원은 전투신을 꽤 많이 다루는 만화이면서도 잔혹한 연출은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일례로 허임의 형 허정(許定)의 아버지(허임)의 원수를 갚고자 사마 가문을 모조리 도륙하는 장면에서도 시체만 그려 넣는 식의 ‘’결과‘만 표현하는 형태로 연출 면에서 최대한 자제하는 식이었다. 고문을 가하는 장면도 최대한 생략을 가해서 표현했었고.
이런 화봉요원에서 ‘목’을 창대에 꽂아 넣는 잔혹한 연출은 72권에서야 처음 나온다. 마초를 도발하려는 목적으로, 가후가 마등(馬騰) 3부자(父子)의 수급을 창대에 꽂아 보란 듯이 전시했던 편이었다.(72권 562화)
한수(韓遂)가 그려놓은 큰 그림을 무시한 채, 눈에 뵈는 것 없이 조조군 적 본진에 돌격하여 미쳐 날뛰는 마초에게 ‘정당성’을 심어주기 위해 진모작가는 이런 수단까지 동원했던 것이다.
그런데 72권이 되서야 처음 나왔었던 고문 장면을, 진모 작가님은 작정하고 계속해서 그려내고 있다. 그 주체는 다름아닌 하제(賀齊)다.
이런 마초마저 격분하여 이성을 잃게 만드는 짓을, 마초를 빡돌게 하고자 가후가 ‘특별히 고안한’ 고문장면을 하제(賀齊)는 서슴없이 저지른다는 점에서 우리는 기겁하지 않을 수 없다. 화봉요원에서 고문의 달인으로 나오는 가후조차, 저렇게 목을 창대에 꽂는 짓은 세 개밖에 만들지 않았다. 그런데 하제는 이런 ‘목’을 몇 십도 아니고 물경 일만(萬)개나 만들어 버렸다니.
주군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적을 죽이고, 저항하는 산월(山越)족들을 말 그대로 씨몰살해버린다. 저렇게 수급을 베어 창대에 꽂는 식으로.
때문에 하제의 이런 ‘처형식’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간 삼국지를 알던 사람에게 하제는 단순히 ‘이민족 토벌 스페셜리스트’에 불과했다. 그간 이런 관점에서 ‘이민족’들이란 사람이 아니라 비(非)유기체로, 다시말해 하나의 기계부품으로 다뤄지기 일쑤였다. 살펴보면 ‘이민족 토벌 스페셜리스트’라는 하제의 별칭부터가 그렇다. 사람을 ‘토벌’하는데 있어서 전문적이라는, 이민족의 전면적인 몰개성화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진모의 이런 연출은, 역설적으로 이민족들을 달리 생각해볼 여지를 마련한다. ‘이민족 토벌 스페셜리스트’가 사람들의 목을 일일이 베어 창대에 꽂는 소름 돋는 광경은, 역으로 죽어간 이들이 한족(漢族)의 경계에서 밀려난 외부인/비인간이 아니라는 점을 생동감 있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리고 화봉요원상의 하제는 이런 ‘사람’들을 한족과 이민족을 가리지 않고 일일이 목을 베는 것이고.)
또한 이런 ‘이민족’의 인간화는, ‘이민족 토벌의 스페셜리스트’란 별명의 훈장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