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 히로인으로서 세이버의 감정선을 자세히 살펴보자.
본문
초반부의 세이버의 시로에 대한 감상은 "애는 착한데, 얘가 왜이러지?" 수준에 머물러 있었음.
에미야 시로라는 인간의 병적인 자기희생이나, 자신의 가치를 0으로 두는 사고방식은 평범한 인간에선 나올 수 없기 때문.
그 의문이 해소되지 않은 시점에서도 조금 썸 비스무리한 단계는 진행중이지만, 마력공급(ㅅㅅ)까지 한 것 치고 세이버쪽에서 시로에 대한 감상은 저기서 그쳤음.
대부분의 이벤트는 시로가 세이버를 여자애로서 대하다 보니까 세이버가 당황한 수준이고.
그러다가, 세이버가 시로의 가장 깊은 기억을 꿈에서 본 순간부터 달라짐.
시로의 상태에 대한 의문이 전부 동정심으로 바뀌고, 시로의 동기를 이해하게 됨.
"자신을 죄인으로 규정하고, 타인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삶". 즉, 왕으로서 자기 자신을 잘라내 왔던 자신의 삶과 시로의 삶의 방식이 너무나 닮았다는 사실을 깨달음.
차이점이 있다면, 세이버는 선택권이 있었고 인생의 마지막에 후회하며 자신을 죄인으로 규정했지만 시로는 선택권도 없이, 전부 빼앗기기만 했으면서 전부 짊어지고 자신을 죄인으로 규정했다는 것.
그렇기에 세이버는 시로도 자신과 같은 소원, 즉 "과거를 고쳐 그 절망을 없었던 일로 하는 것"을 원하리라고 생각함.
세이버의 입장에서 시로는 마땅히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누려야 했을 소년이니까. 그만둘 수 있다면, 그런 희생으로 점철된 삶을 당장 그만둬야만 하니까.
그래서 데이트날, 대화중 시로가 직접적으로 세이버의 소원을 부정한 것에 답답해하고, 배신감을 느낌.
시로도 되돌리고 싶어 할 거면서, 스스로 소원을 자각도 하지 못하고 과거는 바꿀 수 없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만 하고 있으니까.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세이버의 착각이었다.
시로는 자신의 소원을 자각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이미 "지금까지의 상처, 지금까지의 상실이 쌓아올려진 것이 자신"이라며 과거를 바꿀 수 있다는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인간이었음.
그리고 세이버는 깨달을 수 밖에 없었다. 시로가 자신의 소원을 부정한 건 "남 일이니까 할 수 있는 원론적인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것을.
시로는 진심으로, 세이버가 내버리려고 하고 있던 그녀의 과거를 아름답게 여기고, 그것을 긍정해주기 위해 세이버의 소원을 부정했다는 것을.
그리고 세이버는 드디어 가슴을 펴고 자신의 삶에 대한 긍지를 회복한다.
자신이 그토록 잘라내려고 부정했던 인생을 사랑해준, 긍정해준 소년에게 보답하는 방법은 그것 뿐이었으니까.
겨우겨우 마지막 날에서야 서로 완전히 이해하고, 완전히 서로의 마음이 하나가 되었지만 이 날 깨달은 것은 모든 싸움이 끝난 뒤에도 변하지 않았다.
시로는 언젠가 보았던 세이버의 아름다운 삶의 방식을 계속해 동경하며 그녀를 쫓고, 세이버는 시로의 애처로운 삶의 방식에 여전히 아파하면서도 긍정해주며 그를 기다린다. (라스트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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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버가 생각했던, "자신과 똑같은 소원을 품은 시로"도 등장하긴 한다. 물론 세이버의 상상보다 최악의 상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