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완전히 새롭게 각색된 계륵 이야기가 기대되는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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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화봉요원 스포일러 주의
계륵(鷄肋).
먹기는 별로인데 버리기는 아까운 것을 닭갈비에 빗댄 고사성어.
삼국지연의의 양수와 조조의 일화에서 나온 에피소드가 유명하다.
유비와의 한중전투에 대해 고민하던 조조가 무의식중에 암구호를 "계륵"이라 정했고
그걸 들은 양수가 "아! 조조님은 한중이 닭갈비 같아 포기하나보다!"란 깨달음을 얻고
하후돈을 설득해 전군 철수 준비를 했다가 참수당하는 에피소드.
어릴 때는 조조 쫌쉥이쉑 똑똑한 선비를 이렇게 죽이나 하는 감상을 갖지만
커서 보면 참모따리가 지휘관 재가도 없이 뇌피셜로 전군의 짐을 싸게 만든...
처벌받아도 할 말 없는 사건으로 감상이 바뀌는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다만 기록 기준으로는 약간 얘기가 다른데,
조조의 계륵 발언과 양수의 간파까진 대충 골자가 같지만
월권행위나 처벌은 없었다. 정사의 양수 처형 시점과 사유는 완전히 다른 부분.
뭐 당장 중요한 건 아니니까 넘어가고.
오늘의 주인공은 연의/정사의 양수가 아닌
만화 화봉요원의 양수.
이 만화의 다른 캐릭들처럼 양수도 꽤 많은 각색과 버프가 있는데
그 양수의 유명 에피소드인 계륵에 대해 수상쩍은 복선이 있다.
적벽대전, 조조군 막사에 잠입한 유비의 첩자들.
역병으로 비몽사몽인 장교한테서 "계퇴=닭다리" 암구호를 알아내는데
"조조군은 닭의 각 부위를 암호로 쓰는 걸 좋아한다"는 대사가 있다.
삼국지 읽어본 사람이면 당연히 아 ㅋㅋ 계륵 복선 ㅋㅋ 하고 알아챌 수 있는데,
한번 더 생각하면 이건 원작의 계륵 에피소드를 완전히 뒤집는 메타발언급 대사다.
원작에서 "계륵"을 들었을 때 하후돈이 당황하고 양수가 뇌내계산기를 돌린 건
그만큼 계륵이 낯설고, 비정상적이고, 평범하지 않은 암구호였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닭 부위를 돌려썼으면 양수가 "왜 암구호가 계륵인지" 추측할 이유나 있었을까.
아 오늘은 닭날개가 땡기셨나보네... 아 오늘은 닭모가지가 눈에 띄셨나보네...
이러고 말았겠지.
그런 의미에서 화봉요원의 "계퇴"와 "조조군 암구호로 자주 쓰이는 닭 부위" 대사는,
"계륵"의 특이성을 빼앗고, 원작 계륵 에피소드가 그대로 나올 가능성을 깎는 중요 복선일 수 있다.
또 하나의 의문점은 양수라는 캐릭터 그 자체.
원작/역사의 양수는 군사적 공은 1도 없고 사람 속 잘읽는 똑똑이 정도지만
화봉의 양수는 원방, 전풍, 원소를 제거하고 관도대전의 승리를 이끈 공신이자
이간계, 정보 교란, 사보타주에 뛰어난 최상급 책략가로 그려졌다.
적벽대전 챕터에서 보여준 모습(조비파-조식파 이간질, 순욱 교란)까지를 보면
걍 머리가 좋은 수준이 아니라 주변의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개변할 능력이 있고,
사마의의 경계를 사거나 순욱의 뒤통수를 후려갈길 정도의 정치력을 가진 내부의 적.
지 잘난 맛에 살다가 지 잘난 맛에 뒤진 원본 양수와는 완전히 다르고
이런 인물이 똑똑한체 뇌피셜 돌리면서 멋대로 전군후퇴령을 내릴 것 같지도 않다.
즉 원작의 계륵 에피소드를 만들어낸 두 가지 요인인
1) "계륵"이라는 암구호의 특이성과
2) 그걸 멋대로 해석하고 멋대로 행동할 양수의 캐릭터성이
화봉요원에서는 이미 모두 배제된 상황.
단 그렇다고 화봉요원에서 계륵 에피소드가 아예 안 나온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어쨌든 삼국지 2차창작에서 양수의 등장의의는 결국 계륵으로 귀결되는 게 보통이고,
위의 "계퇴" 대사도 계륵의 존재감을 독자에게 환기시키는 기능 정도는 하고 있기 때문.
주인공 사마의의 가장 큰 내부의 적이 양수라서, 그의 몰락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기도 하고.
정리하면 작가가 적벽대전 파트에서 굳이 계퇴 대사와 양수의 사보타주를 집어넣은 것은
화봉요원의 "계륵"이 완전히 새로운 전개로 그려질 거란 복선을 준다고 생각하는데,
유일한 문제는 그거 나올 한중전투까지 아직 만화가 갈 길이 멀다는 것.
본토 원서 기준 앞으로 몇 년은 더 걸리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