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화봉요원이 묘사한, -백성-의 입장에서 본 조조와 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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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봉요원 스포일러주의!
간밤에 베스트에서 화봉요원이 핫했길래 써보는건데...
아무래도 장판파라는, 두 캐릭터의 입장이 워낙 극명하게갈리는 챕터가 주제였기 때문에 유비 지지세가 압도적이지만
사실 만화 전체적으로 보면 작가는 둘 중 누구 하나에게스포트라이트를 몰아주기보다는
일단 조조와 유비를 "삼국지 최고의 두 군주"로전제하고, 단지 지향이 다르다는 식으로 묘사하는 식으로 전개함.
그 묘사라는 게 여러 방법론이 있지만 가장 눈에 띄는 건이름없는 백성을 활용한 몇몇 스토리인데
기본적으로 "세탁 전문 만화"라는 평가답게 화봉요원캐릭터들은 초반 광탈할 캐릭터나 빌런에 대해서도 묘사가 후함.
심지어 그 동탁도 나름의 대의와 신념이 있고, 원술도백성을 걱정할 줄 안다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줌.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관점"으로만 대의와 민심을보았을뿐
진짜 백성들이 뭘 원하는지에는 관심이없었고결국비참한 몰락을 맞이함.
조조와 유비가 작품 안에서 다른 군주들과 차별화되는부분이 바로 이 부분인데,
우선 순서상 조조를 지지한 백성을 어떻게 그렸는지 먼저보면 이럼.
단행본 기준 10권. 허름한 판잣집에서 먹을 것도 없이살고 있던 이름없는 노인.
조조는 군량을 좀 나눠주려고하지만노인은어차피 도적한테 뺏길 것 필요없다고 하고
다른 가족들도 이미 전쟁과 기근으로 다 죽어버린 상황이라삶의 의욕 자체가 없는 상황.
조조는 이 노인에게 "천하를 구할 길이 있는가"를물어보는데...
노인은 "집"과 "천하"를 비교 대상으로 삼고 제후들의욕망이 천하(=집)의 기둥을 갉아먹고 있다고 표현함.
설령 집(=천하)을 아무리 보수하려고 해도 기둥이 상한이상 언젠가는 무너지는 법.
노인은 스스로를 인자(仁者)로 칭하는 어떤 자들(=다른제후들)은 집을 고쳐주려고 하지만 별 의미가 없다고 하는데
노인은 민심이니 대의니 지껄이는 제후들은 지금의 상황을근본적으로 해결할 능력이 없고,
우선 강한 힘을 가진 자가 강제로라도 이주시켜서(=천하를바꿔서) 해결해야 한다고 이야기함.
백성은 결국 개개인으로서 힘이 부족한존재이고
그 부족한 힘을 벌충해줄 수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강한 힘을 가진 폭력적인 제후.
설령 폭력을 쓰게 되고, 백성들로부터 원망을 받게 된다고해도
그게 무서워 어진 척하는 다른 제후들은 결국 멀리 보는식견이 없어서 집(=천하)이 무너지게 둘 수밖에 없다는 것.
여기서부터는 노인이 아니라 곽가의 대사지만, 표현법만조금 다르고 사실상 노인이랑 같은 주장임.
결국 어질고 덕 있는 척하는 다른 제후들이라고해도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서 = 전쟁 없이 천하를 손에 넣을수는 없다.
아름다운 살인과 올바른 살인은 따로없다.
= 아름다운 전쟁과 올바른 전쟁은 따로없다.
= 어진 군주와 폭력적인 군주는 따로 없다. 모두가전쟁을 일으킨 자고 모두가 살인자다.
기왕 어차피 근본적으로 똑같은 존재라면 문제를 해결할 수있는 존재가 돼야 한다.
번지르르한 대의보다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강력한 힘이 필요하다.
당장은 악명이 되고 민심을 잃을지 몰라도, 길게 보면그게 오히려 백성들에게 진정한 희망이다.
이 지점부터 조조는 곽가를 주 군사로받아들이고,
하후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지옥에 갈지언정 천하를위한 일을 한다는 대의를 손에 넣게 됨.
높으신 곳에서 자신들의 눈으로만 본 공허한 민심을 망상한다른 군주들과는 달리
조조는 진짜 백성을 마주하고, 진짜 백성의 뜻을들음으로써 대의를 얻은 것.
다른 장면이긴 하지만 제갈량의 스승인 수경선생도 "지금천하에 백성을 위해 일어난 자는 조조와 손견뿐"이란 대사가 있기도 하고.
그렇다면 유비를 지지한 백성은 어떻게 그려졌는가보면,
단행본 기준 48권. 시간을 꽤 많이 점프해서 적벽대전챕터 직전의 장판파.
많은 수의 피난민이 유비를 따라 남쪽으로 도망가고 있는상황인데
그중에 한 부부가 요원화(나름 이 만화 주인공)의 눈에띔.
남자는 어떻게든 가자고 격려하지만 아내는 어디로 가도결국 조조가 쳐들어오는 건 마찬가지 아니냐는 체념 상태.
요원화는 실제로 어디나 마찬가지일 테니 그냥 돌아가라고이야기함.
요원화의 대사가 짧기는 한데 의미를 따져보면 위에 곽가의대사와 크게 다르지는 않음.
남자는 "조조의 천하는 영원히 태평할 수 없다"고하지만
사실 당장 싸울 힘이 없어서 도망치는 유비도 태평하지못할 건 마찬가지.
곽가의 말대로 어차피 제후들이 다 똑같은 존재라면 조조를따르나 유비를 따르나 일반 백성에게는 마찬가지고
집이 있는 형주로 그냥 돌아가는 게 낫지 않겠냐는 것이요원화의 권유지만
이 장면의 남자 대사는 위에 10권에서 나왔던 노인의대사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과 다름없음.
"인군과 폭군은 다름없다"는 주장은 결국 다른 선택지가없는 상황에서 받아들이는 체념이고,
백성들도 사실 속으로는 어진 군주를 원하고 있으며 선택과행동의 여지가 주어진다면 가만히 앉아있지는 않겠다는 것.
따져보면 "앉아있지 않고 떠난다"는점에서는
"집(=천하)이 무너지고 있으니 힘으로라도 이주시켜야한다"는 노인의 논리와 결론적으로는 상통하지만
그것이 타인의 강제에 의한 피동적인 순응이냐, 혹은자신의 의향에 의한 능동적인 선택이냐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
"밝은 길은 자신이 찾아야만 한다"는 남자의 마지막대사는 그런 능동성에 대한 강조이기도 하지만
요원화의 개인 스토리와도 얽히는 대사라 이건 만화를전체적으로 한번 읽어본 사람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음.
어둠속에서 개인의 사욕을 위해 사람을 죽여온 자객인요원화는 항상 그 삶을 벗어나 빛이 있는 곳으로 기어나가고 싶어했고,
그러기 위한 밝은(亮) 길을 찾아내길갈구해왔음.
그런 의미에서 이 이름없는 남성캐릭터는
화봉요원의 작중 백성들이 왜 힘도 없는 유비를지지하는가를 구체적인 텍스트로 보여주는 기능을 함과 동시에,
음지의 자객 요원화가 양지의 무장조운의 길을 선택하게 만든 마지막 트리거이기도 함.
하지만 화봉요원 작가는 배배꼬일 대로 꼬인 사람이라
조조와 유비에게 부여한 대의를대의 그 자체로만 두고
밝은 모습으로는 절대로묘사해주지 않음.
지옥에 가더라도 강한 힘으로천하를 구하겠다고 결심한 조조는 정작 서주를 백성의 지옥으로 만들어놓았고,
인군으로서 백성에게 선택받은유비는 정작 그 백성을 보호하지 못했고, 살해당하는 것도 전혀 막지 못했음.
이건 쫓아와서 죽인 조조군잘못 아니냐? 라고 할 수 있는데
다른 챕터에 대놓고 "백성들데려가는 게 명성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유비군 회의 장면이 나와서 아웃.
어떤 의미로 화봉요원이 백성캐릭터를 사용해서 조조와 유비에게 부여한 두 대의는 서로에 의해 반박당하는 물고 물리는 구조임.
인군과 폭군이 같다면, 최소한힘을 가진 폭군이 되어 천하를 구하겠다 → 그 힘으로 천하를 구하기 위해 한다는 짓이 대학살.
인군과 폭군은 같지 않고,백성이 원하는 인군이 되어 천하를 구하겠다 → 구할 힘도 없는 주제에 명성의 도구로 백성을 이용.
적당히 작화랑 대사만 봐도 볼맛 나는 만화지만
약간 깊이 들어갈수록 괜히읽는 사람 머리 아파지게 만드는 만화인 건 틀림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