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피스) 에이스의 심리와 그의 치명적 강박에 대한 고찰(장문)
본문
가프 말마따나 에이스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태생만으로 "당연히" 사형인 인생으로 태어났음.처음부터 세계정부로 표상되는 사회질서에 섞일 수가 없었단 얘기지.
가프는 그런 에이스가 어떻게든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삶을 살길 바랬고, 그래서 해군에 입대하도록 닦달했음. 자신처럼 정부도 쉽게 버릴 수 없을만큼 강해지고 공을 쌓으면 다짜고짜 처형은 면할지도 몰랐으니까.
그리고 현역 해병인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이라는 보호막이 사라지기 전에 에이스를 그 정도로 키우지 않으면 안됐기 때문에 가프로서는 더더욱 조급했을 거임. 독자야 "아 가프가 죽겠냐고ㅋㅋㅋ" 하지만, 당장 록스를 비롯해 무수한 최강자들의 죽음에 공헌하거나 경험한 가프가 자신만은 그 투쟁의 세계에서 남다를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겠지.
그러니 그건 가프에게 있어서는 유일한 방법이었겠지만,
에이스 입장에서는 "강해져야 한다. 강해지지 않으면 네가 살아있어도 된다고 세계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묵언의 요구 자체가 극히 부조리한 폭력임.
자신은 아무것도 한 적 없고 그저 존재할 뿐인데 네가 존재해도 되는지를 계속 증명해라 라는 사회의 거대한 명령이 계속되니까, 그리고 자신이 "세계"라고 불리는 것에서 도망치지 않는 한 끝나지 않을 명령임을 알았으므로 에이스는 해적이 되기로 선택했지.
중요한 것은 에이스는 근본적으로 그런, 끝없는 투쟁 속에 사는 삶을 기껍게 받아들이는, 친부 로저 같은 인물이 아니었단 거임.
물론 샹크스 말마따나 성격적으로 로저와 에이스는 닮은 구석이 많음. 하지만 사상의 차원에서 보자면, 에이스는 "세상을 발칵 뒤집어보자!" 며 투쟁의 삶을 즐겨온 로저와는 전혀 다름.
드래곤이나 사보처럼, 세계의 부조리를 민감하게 느끼고 그것을 바꾸기 위해 투신하는 혁명가도 아니고
로저나 루피처럼, 자신의 힘을 증명하지 못하면 짓밟히고 도태되는 가혹한 세계에서 한없이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에 지칠 줄 모르고 도전하는 야망가와도 거리가 멂.
에이스 자신이 죽기 전 말한 것처럼, 에이스의 진정한 바람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해주는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이었지. 내가 더 강해지거나 명성을 떨치거나 쓸모를 계속해서 증명하지 않아도, 그냥 자신을 자신 자체로 반겨주는 삶.
소시민적인 바람이지만, 그 소시민적인 바람조차 태어난 순간부터 원천적으로 차단당해서, 전사가 되어야만 했던 삶. 그것이 에이스의 근본적 비극임.
더 큰 비극은 에이스 자신이 그런 자신의 진정한 욕망을 자각하지 못한 채 살아가야 했다는 것임.
위 대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에이스가 선택한 해적의 삶은 사실 가프가 요구한 해병으로서의 삶의 반전된 버전에 불과함.
"세계(정부)에 끊임없이 너의 쓸모를 증명해서 너의 존재를 인정케 하라"는 거대 질서의 명령이
"세계(정부)에 끊임없이 너의 위험성을 증명해서 너의 존재를 부정하지 못하게 하라"
로 치환되었을 뿐임. 방향성이 달라졌을 뿐 에이스의 삶은 여전히 인정투쟁에 얽매였고, 해병으로서의 공이 아니라 해적으로서의 악명을 자신의 존재가치로 삼았을 뿐인 거지.
즉 가프로 표상되는, "너는 너의 존재이유를 증명하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 라는 거대질서의 소리없는 명령은 이미 에이스 자신에게 내면화되어 있었음.
출항하던 17세의 에이스는 자신이 가프가 요구하는 세계, 자신에게 인정받으라고 명령하던 세계를 떠나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했겠지만, 이미 그 성장의 기간동안 에이스 자신이 자신에게 명령하는 자가 되어 있었던 거지. "너(나)는 해적으로서 계속 투쟁하며 너의 존재를 입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라고.
"빅 맘이나 카이도였다면 에이스를 포용해주지 않았을까?" 라는 질문이 제기되고 긍정적으로 이야기되기도 하지만 나는 불가능했을 거라고 생각함. 적어도 에이스가 원하는 형태의 포용은 아니었을 거임.
빅 맘은 에이스의 뛰어난 재능을 눈여겨보아 그를 받아들이고 높이 대우해줬을지도 모름. 하지만 그건 "네가 내게 도움을 주니까[= 주는 한] 너를 인정해주마" 라는 빅맘의 명령에 복종할 때의 이야기임. 빅맘은 시폰이나 푸딩 등 자신의 친자식조차 그런 명제에 따라 판단하는 인물이고.
그리고 이는 "세계정부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증명하면 너는 인정받을 수 있다" 라는 기존의 명령에서 주체만 바뀐 것일 뿐임.
카이도도 에이스의 실력에 눈독을 들여 그를 중용했을지도 모름. 하지만 힘의 정의를 찬양하는 카이도에게 살 가치가 있는자는 전사, 그것도 강한 전사뿐이고, 그는 심지어 전 인류가 그런 존재 증명의 투쟁에 강제로 뛰어들도록 만드는 게 목표인 사내지.
그래서 카이도는 오히려 에이스에게 있어 최악의 아버지가 될 수밖에 없음. "너의 힘을 증명하는 한 너를 인정하겠다" 라는 카이도의 명령은 평생 그런 삶을 살며 지쳐버린 에이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명제가 아니니까.
앞에서도 말했지만 에이스는 강한 전사지만, 근본적인 심성에서 전사적 삶이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고, 따라서 오히려 살아있을 자격이 없는 자로 누군가를 규정하고 짓밟고 조롱하는 카이도의 세계는 에이스의 세계와 원천적으로 조화할 수 없음.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한다면, 그 한에서 너를 아들이라고 부르겠다" 라고 말하는 부모가 좋은 부모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잖아? 자기 자신도 모르게 이상적인 아버지상을 찾아 헤맨 에이스는 어차피 빅맘이나 카이도를 받아들일 수 없었을 거임.
흰 수염만이 에이스에게 구원이 될 수 있었던 건 그 때문이고.
인정투쟁을 멈춰도 되는 곳을 마련해준 것이 흰 수염 뿐이었으니까. 위대화에서,
"너희들, 왜 그 자식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라는 물음은 조금 구조를 정비해서 재발화하면 이거임.
"그 자식은, "나를 위해 무엇을 하면 너의 존재를 인정해주겠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지?"
즉 에이스는 흰 수염과 선원들의 의사부자관계에 개재하는 "거래"가 무엇인지 물은 거임.
- 할아범(정부)은 내가 사회를 위해 공을 세우면 세계가 인정해줄거라고 했다.
- 나는 사회에 더 격렬하게 반항하면 세계가 날 부정할 수 없다고 믿는다.
- 흰 수염이라는 그자는 "무엇 하면" 너희를 아들로 부르겠다고 하는가?
그런데 마르코는 "그분이 아들로 불러주니까" 라고 대답함. 인정만이 있을 뿐, 거기에 조건은 없다고. 이 대화가 있은 직후 흰 수염 해적단에 합류한 에이스의 모습이 나오는 것을 보면, 에이스가 흰 수염의 어떤 점에 끌렸는지 알 수 있음.
투쟁하지 않아도 존재를 긍정한다는 것.
이 사람 밑에서는 "봐, 이번에도 내가 해냈어. 난 도움이 되니까 아직 살아있어도 돼. 오늘도 죽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생겼어" 라고 스스로에게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
게시판에서도 "에이스가 흰 수염이 아니라 가프나 카이도 밑에 있었으면 더 재능이 개화했을 것이다" 라는 의견이 종종 나오고, 나도 동의함. 에이스는 흰 수염 밑에서 성장이 점점 둔화된 것이 있다고 봐.하지만 에이스 자신은 그런 게 중요하지 않았을 거임.
"강해지지 않으면 존재를 부정당하는 세계에서 계속해서 강해지는 것이 정녕 삶의 행복인가?" 라고 물으면
행복의 관념과 개인의 기질에 따라 다양한 답이 나오겠지만, 적어도 에이스에게는 분명히 아니었음.
에이스가 진정으로 원했던 건 태어난 순간부터 계속된, "네가 ~하면 널 사랑하겠다" 라는 인정투쟁의 굴레로부터의 해방이었으니까.
당당히 증명해내는 삶이 아니라 증명을 요구받지도 않는 삶이었으니까.
에이스가 이런 모순적인 대사를 한 것은 이런 이유임.
말로야 "아버지는 널 그냥 사랑하셔. 네가 그분을 위해 뭘 해내니까 사랑하는 게 아니야" 라고들 해도,
그게 진심인지는 알 수 없는 거니까.
사실 내가 강하고 쓸모있어서 데리고 있는 건지도 모르니까.
무조건적 사랑을 갈망하면서도 그런 사랑을 믿을 수 없는 환경에서 자란 에이스에게 그런 의심이 싹트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을 거임.
하지만 흰 수염이 자신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지.그래서 에이스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인정투쟁에 대한 강박은,정 반대로 도치되어 새로운 굴레가 되어버림.
"내가 아버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한다면, 아버지는 나를 사랑해주실 것이다." 에서
"아버지가 나를 사랑해주시니까, 나는 아버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로 말이지.
에이스가 흰 수염을 해적왕으로 만드는 데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것, 흰 수염의 사랑을 배신한 티치를 집요하게 응징하려 한 것은 이런 심리의 발로임.
나의 무의식은 세상에 조건 없는 사랑은 없다고 말하고 있는데, 나는 이미 사랑을 받고 있으므로 도대체 무엇인지 모를 그 조건을 내가 반드시 이루어줘야 해. 그렇지 않으면 부당거래니까. 아버지의 사랑을 아무 대가도 내지 않고 착취하는 거니까.
그런 도치된 명령은 "조건"을 "의무"로 바꾸고, "아버지가 나를 사랑해주시는 대가로 나는 아버지를 해적왕으로 만들어드려야 한다" 라는 강박이 그를 얽매는 사슬이 되었지.
그런데 내가 약해서 실패했는데도,
내가 아버지의 뜻을 거슬러 마음대로 행동했는데도,
내 탓에 가족 전체가 위기에 처했는데도,
내가 가족의 모든 장래를 망쳐버렸는데도,
아버지(흰 수염)와 식구들은,
.....그리고 내 어린 동생은,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거야? 넌 우리가 사랑하는 에이스잖아!" 라고 피와 땀으로 외치고 있다는 사실.
나의 나약함이, 어리석음이, 민폐가, 돌이킬 수 없이 저질러버린 거대한 피해가 전혀 그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되지 못한다고 웅변하고 있다는 것.
세상엔 무조건적인 사랑이 존재하고, 나는 감히 그것을 받으며 살았었다는 실증.그것을 비로소 얻었기에 터져나온 것이, 비극의 한복판에서 참으로 모순적인 "기쁨의 눈물"이었던 거지.
아이러니하게도 정상전쟁이라는 "대민폐"를 에이스가 촉발하지 않았다면, 에이스가 진정으로 구원받는 순간은 오지 않았을 거임. 정말로 모든 "조건절"의 강박에서 해방되는 순간은 말이지.
결국 에이스의 서사는, 아버지의 강성한 기질은 물려받았지만 야심가보다 소시민적 삶을 원했던 소년이,
그 삶 자체가 처음부터 불가능한 세계에서 "네가 존재해도 된다고 증명해 봐"라는 터무니없이 부조리한 물음에 뒤쫓기다
결국 그 물음을 내면화해 자기 자신도 원하지 않았던 인정투쟁의 삶에 매몰되어 살아가던 중
자신에게 찾아온 "무조건적인 사랑"에 감복하면서도 의심해 "사랑해준 대가를 갚으려" 무모한 짓을 벌이다가
모든 것을 내던지고 자신같은 민폐꾼을 구하러 온 가족들(루피 포함)을 보며, 자신이 평생 간구하던 것을 이미 누렸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죽어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음.
그의 비극은 물론 그의 어리석음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지만, 그 어리석음을 한 아이에게 쑤셔넣은 세계 자체의 책임까지 전부 그에게 돌려서는 안된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