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피스) 에그헤드 편 키자루의 복잡미묘한 심리 분석 (장문)
본문
대충 살자 중간만 가자가 신조인 사나이답게
에그헤드에서 적으로도 아군으로도 대활약한공평한 어시스트의 달인 키자루.
루피랑 한판 붙었다가, 그러다 쓰러진 다음엔 회복하는 걸 도왔다가, 그래놓고 다시 싸우는 등 에그헤드에서 키자루의 행적은 종잡기 어렵고 많이 혼란스럽다.
이는 물론 키자루 자신이 처한 처지가 매우 혼란스럽기 때문.
그렇다고 안 그래도 25년치 복선이 줄줄이 터지며 정보량이 오버플로우하는 최종장에서, 주인공도 아닌 이 아저씨 심리에만 집중해서 읽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더더욱 행보를 따라가기기 어려운 면이 있는데,
키자루의 이 복잡한 행적은 "베가펑크에 대한 태도"와 "보니에 대한 태도"를 따로따로 두고 생각할 때 이해하기가 쉽다.
키자루가 에그헤드에 온 목적은 베가펑크의 말살이었고, 따라서 키자루는 출동한 시점부터 "친구를 죽여야 한다"는 사실은 이미 인정하고 체념하고 있었다.
군인으로서 정식으로 내려진 지령에는 복종할 의무가 있는데다, 법 자체가 악법인 것과 별개로 베가펑크는 "연구하면 죽는다"고 정부가 대놓고 엄포를 놓은 공백의 100년을 기어코 자의로 연구한 것.
즉 소위 말해 "죽을 짓 해서 죽는 것" 이고 지팔지꼰이라
속으로 "에휴시발 영감탱아....;;" 하고 한숨은 팍팍 쉬었을지언정 명령을 무시하고 탈출하게 도와준다거나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봐야 한다.
즉 이때 말한 "길게 끌고 싶지 않으니까 미안하지만 바로 죽이겠네." 가 키자루의 진심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친구를 자기 손으로 죽여야 하니까 기분 X같기는 해도
어쨌든 그 친구가 무고하냐면 (세계정부 기준으로) 그것도 아니고
윗선이 하필 자길 책임자로 뽑은 이유도 납득이 갔기 때문에사(私)보다는 공(公)을 우선한 것.
고로 베가펑크 암살을 저지하려는 루피와의 1차전에서 키자루는 진짜로 빡겜했다고 보는 게 맞다.
WWE가 아니라 UFC였다는 것.
"사과아저씨 너네편아님? 근데 왜 네가 죽이려고 함 진짜모름" 하고 순박하게 묻는 루피의 질문에 긁힌 것도 100퍼센트 찐이었고
그냥 들어가서 눈딱감고 빔한번쏘고 이 거지같은 하루를 얼른 과거로 치워버리고 싶은데 앞에서 히히 못가 하고 버티고 있는 사황놈이 개같았던 것도 진심임.
그 증거로 키자루는 긁킥으로 루피를 직선으로 쭉 넉백해 돔 바깥까지 날려버린다. 당장 쓰러뜨릴 순 없고 거슬려 미치겠으니까 장외로 날려버린 것.
저 배리어가 이래봬도 보통 물건이 아니라서그 밀짚모자 일당도 저거 해제될 때까지 꼼짝없이 갇혀서 농성만 해야했다.
당장 루피도 기어 5 켜고 들어오면서 아파죽겠다고 투덜거렸고, 실제로저걸 무식하게 몸빵으로 뚫고 들어온 건 루피랑 나중의 마스 성 뿐임.
그나마 마스 성은 재생하니까 노 페널티로 됐던거고.
그러니까 키자루가 루피를 돔 너머로 날려버린 건 진심으로 베가펑크 척살임무를 방해하지 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베가펑크 살리고 싶었으면 루피랑 오래오래 질질 끌며 싸웠겠지. 적어도 지면으로 날려서 금방 복귀할 수 있게 하던가.
즉 저 장면은 당시 키자루가 루피하고 찐텐으로 싸웠고, "베가펑크 말살임무"는 성공해야 한다는 스탠스에 있었다는 방증이다. (그리고 모두 알다시피 그는 나중의 혼파망 상황에서도 베가펑크 척살만은 기어코 성공해낸다.)
그럼 여기서 궁금해지는 게 "그럼 1차전 끝내고 루피 밥은 왜 준 거임?" 일 것이다.
그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키자루가 "움직일 수 있는데도 안 움직이고 뻗어있던 이유"와
"루피에게 음식을 가져다준 이유"는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키자루는 루피와 한판 붙은 뒤에도 여력이 남아있었던 건 확실하다. 조금 있다 플라잉 배민라이더로 슝슝 뛰어도 주니까.
그런데 왜 탈진한 루피한테 결정타를 안 먹이고 "못 움직이겠네요~" 엄살 부리면서 누워 있었을까.
이미 새턴 성이 상륙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HP 바닥난 루피 정도는 새턴 성이 무난히 죽일 수 있을 테니까 그냥 누워있기로 한 것. 즉 키자루는 루피가 살든지 죽든지 그닥 관심이 없었다.
그럼 루피 죽이기 싫은 것도 아닌데 왜 이러고 있었느냐, 그야 사황 비겼다도르로 체면치레만 하고 이렇게 뻗어있으면
베가펑크를 "내 손으로" 안 죽여도 되니까.
저 상황에서 루피 목을 따버리고 나면 그 다음엔 베가펑크 사살에도 나서야 하는데
엄연히 최고 상관이자 세계황제급 최고존엄 되시는 분에게 "아~ 이게 제 임무긴 해도 친구 죽이려니 마음이 아픈데 걍 님이 저 대신 손에 피 좀 묻혀주시면 안돼요?" 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하지만 "크으윽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데 카이도조차 쓰러뜨린 사황 밀짚모자의 흉악한 펀치에 맞은 상처가 크으윽" 하고 꾀병을 부리면 새턴 성도 "아이고 마 욕봤다 누워있어라" 할거고,
어차피 최강의 보호자를 잃은 베가펑크는 새턴 성한테든 부하 군인들한테든 죽는다. 즉 임무는 완수된다.
요컨대 "밀짚모자와 더블 KO되고, 마침 섬에는 새턴 성이 와 있다"는 이 상황은,키자루에게는 상정할 수 있는 베스트 시추에이션이었다.
"말살 임무를 완료한다"는 자신의 의무와 "베가펑크 내 친구인데 죽이기 싫은데 힝" 하는 감정 사이에서
애매하고 어정쩡하게나마 타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
따라서 저 장면에서 키자루가 느낀 가장 큰 감정은 "안도" 였지 싶다.
그야 친구 제삿날인데 기분 X같은 건 당연하지만 그거야 이미 각오한 상수고, 내면의 "키자루"와 "볼사리노"에게 각각 변명 정도는 할 수 있게 됐으니까.
"야 너 대장씩이나 돼서 일 안하냐?"는 키자루에게는
"아 내가 사황 커버했으면 된 거 아니냐? 총 몇발 쏘면 죽는 영감태기 꼭 내 손으로 죽여야 하냐고" 라고,
"야 친구를 죽여? 네가 시발 인간이냐?"라고 울며 비난하는볼사리노에게는
"베가펑크는 내가 죽인 게 아냐. 죽인 건 새턴 성이야." 라고 말이다.
따라서 키자루 입장에서는 가만-히 누워있는 게 (이미 X되어버린 수많은 것들을 외면하면) 자신 입장에서 가장 상책이었다.
어차피 넉다운된 밀짚모자도 내버려두면 죽고~
베가펑크도 나 말고 다른 누가 말살 완료 해줄테고~
밀짚모자 부하놈들이야 뭐 용케 튀든 죽든 뭔 상관이람.
(물론 실제론 베가펑크의 서프라이즈 폭로쇼가 예정되어 있어서 못쉬고 개같이 굴렀겠지만 말이다.)
과거의 진상을 알고 눈돌아간 보니가 새턴 성한테 덤비지만 않았다면 키자루는 그냥 누워서 상황을 관망만 하고 있었을 게 틀림없다.
사실 키자루 입장에서 가장 난감한 건 보니였다.
베가펑크야 애초에 임무대상이고 죽는 것도 지팔지꼰 요소가 넘치는데
보니는 태어난 순간부터, 본인의 의지에 무관하게 운명에 휘말려버린 12살 어린애.아무리 그래도 죽어야 하니까 죽는거라고 합리화할 수가 없는 목숨이다.
이 어린것이 저지른 잘못이래봐야 아빠 보고 싶다고 해적기 달고 가출한 것 + 붙잡으려는 해병들 나이 가지고 일시적으로 장난친 게 다니까.
키자루 입장에서 다행인 점이 있다면, 최고지휘관 새턴 성이 "보니는 내버려 둬라" 라고 지나가듯 언급했다는 점.
물론 새턴 성은 "이미 쓸모 다한 애벌레가 통에서 탈출하든 말든 알빠임?" 이라는 뜻으로 한 말이지만
키자루에게 "보니는 내버려 둬라"는 "해적 주얼리 보니를 체포하거나 죽이면 안 되는" 좋은 이유가 되어줬을 것이다. 아 내가 사적인 감정으로 해적을 봐주는 게 아니고, 우리 대빵님이 봐주라고 명령을 하셨잖아 명령을!
이것은 섬 안에서 처음 만났을 때, 키자루가 보니를 "지인", "임무 외" 라고 말하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상관이 내버려 두라고 했으니까 보니는 내 임무 대상이 아니고, 따라서 체포해야 하는 해적이 아니라 그냥 내 지인일 뿐이다" 라고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는 얘기.
저 직후 보니를 발로 밀어 떨어뜨린 것도, 보니가 "삼촌들"끼리 죽고 죽이는 걸 보지 않았으면 했기 때문.
근데 보니가 새턴 성을 찔러버리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이제 보니는 최고위 천룡인에 대한 살인미수자가 됐고, 천룡인을 향한 공격은 명백한 "죽을 죄" 였기 때문.
당장이야 새턴 성이 방심하다 털리고 싶어 환장한 악역처럼 "ㅋㅋㅋ 이딴거 아프지도 않음ㅋㅋ 일부러 맞아준거임 아 니들 잠깐 있어봐라 나 티배깅 좀 하고ㅋㅋㅋ" 이러고 있지만
한 짓이 한 짓이라 보니가 죽는 건 확정적이었다.
그리고 그때,
그러니까 상관이 자신한테 "야, 그만 누워있고 이 계집 죽여" 라고 명령하기 전,
"대장 키자루"가 아니라 "지인 볼사리노 아저씨"로 있을 수 있는 아주 짧은 순간에,
볼사리노는 빛의 속도로 움직였다.
루피에게 밥을 준 건 바로 이것 때문이다.
상관이자 천룡인에게 자신이 직접 반항할 수 없으니까, 보니를 지켜줄 보디가드로 루피를 선택한 것.
대장으로서 사황 살리면 안되는 거 아니냐고?
아 이번 임무는 베가펑크 제거지 사황 토벌 아니거든~
사황 체포하려면 윗분들 허락 받아야 하는데 아직 나한테 "밀짚모자 죽여라" 이런 명령 안 들어왔거든~
그니까 명령위반 아니거든~~
.....대충 이런 정말 논리정연하고 반박할 수 없는 핑계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가지 않았을까?
아무튼 꼭 이런 개똥논리로 무장하지 않았더라도,
이 순간 보니를 구하려는 볼사리노 아저씨가 대장 키자루를 억누르고 뛰쳐나간 것은 사실로 보인다.
다만 여기서 마음에 걸리는 것은 "루피가 회복해서 보니 구하기 전에 새턴 성이 죽여버리면 어쩌려고? 루피가 바로 체력회복 가능하다는 보장은 없잖아?" 라는 질문인데
내 생각에 볼사리노는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다고 체념했을 가능성이 높지 싶다.
즉 100퍼센트 구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또 자기가 직접 상관 턱주가리 날릴 수도 없으니
"직접적인 명령" 바깥선에서 할 수 있는 만큼만 돕고 나머지는 운에 맡겼다는 것.과연 그답게 애매하기 짝이 없는 저항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실제로 루피의 전선 복귀는 키자루의 기대보다 늦어서, 어디선가 날아온 쿠마가 아니었다면 보니는 죽었을 것이다.
물론 쿠마 덕분에 당장 보니가 살아나긴 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최고위 천룡인 시해 미수범"이 늘어난 셈이라 키자루의 고민을 덜어주지는 못했다.
이왕 온 거 차라리 도톰도톰으로 보니 데리고 날라주면 한시름 놓을 텐데, 쿠마란 녀석이 "보니의 곁에 있어라"라는 명령어만 뇌에 남겼는지 튈 생각도 안함.
그리고 보니 때와 달리 이번에는 진짜로 아팠고 진짜로 개빡친 새턴 성은 버스터 콜을 선언, 보니 부녀를 포함한 에그헤드 인원 전원을 말살대상으로 선포한다.
즉 이 시점에서 보니와 쿠마는 "말살 명령이 내려짐" + "죽을 죄(천룡인 폭행) 현행범"으로,베가펑크와 같은 조건이 되어버렸다.
"아직 죽이란 명령 없었으니까" 라는 핑계로 이루어졌던 볼사리노의 애매한 항명이 완전히 틀어막힌 것. 베가펑크를 죽인다면 같은 이유로 보니도 죽여야 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키자루 나름대로 얼마 동안은,
자기가 패도 아무런 죄책감이 없을 해적놈만 직접 패고
보니와 쿠마 상대로는 도주만 봉쇄하는 소극적 임무 수행에 나서는 등 나름대로 임무와 감정 사이의 타협 - 노골적으로 말해 자기합리화 -을 해보기도 했지만,
(이 보니의 도주를 막는 장면은 루피 1차전 직후의 태업과 같은 심리기제다.
보니를 죽이는 게 임무긴 한데 내 손으로 죽이긴 싫으니까 직접 죽이는 건 누가 대신 해줘 라는 심보.)
콕 집어서 "키자루, 네가 죽여라" 라는 상관의 명령이 떨어지자,
처음 에그헤드에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속으로는 에휴싯팔 하면서도 군인으로서 명령에 복종하는 길을 선택한다.
다행히도 때맞춰 밀짚모자 팀 최고의 어시스트,
밀짚모자의 영원한 아군 볼사리노 아저씨의 도움으로 부활한 루피가 키자루를 뻥 날려버려서 망정이지
이미 핑계를 대며 태업할 구실이 떨어진 키자루는 더이상 보니를 "임무 외"로 취급하지 않았을, 아니 못했을 것이다.
실제로 이 이후 키자루는 착잡해하면서도, 보니를 죽이는 것 역시 자신의 임무라고 체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5줄요약
1. 키자루는 베가펑크의 목숨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포기를 했고, 루피와의 싸움도 UFC였다.
2. 볼사리노가 루피한테 막타 안 넣은 건 얘 죽인 다음에 베가펑크도 죽여야 하니까, 아무나 딴놈이 죽이라고 핑곗김에 태업한 거다.
3. 보니가 새턴을 습격하다 붙잡히고, 아직 죽이라는 명령은 안 내려온 그 찰나에, 볼사리노는 보니를 살리기 위해 루피에게 음식들을 주었다.
4. 하지만 결국 보니도 정식으로 말살대상에 들어가고 베가펑크와 똑같은 처지가 되니까, 키자루는 베가펑크와 마찬가지로 보니에게도 "착잡하지만 죽여야한다" 스탠스를 취한다.
5. 결국 내키지 않으면 명령의 회색지대를 이용해 온갖 합리화를 붙여가며 태업은 해도, 일단 명령이 내려지면 감정보다 의무에 복종하는 것이 키자루/볼사리노의 행동 원리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