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만화에서 노력형 주인공이 나오기 어려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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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배틀물 소년만화는 "노력형 실력자"가 나오기에는 오히려 현실보다 조건이 유리함.
현실에서는 아무리 피지컬이 좋아도 세월을 이길 수 없는데,
대부분의 배틀물 세계는 단련만 열심히 하면 노인이 되어서도 간지나는 무쌍 펼치는 게 가능한 세상이니까.
문제는 소년만화 주인공은 이런 대기만성형 장년캐가 될 수 없다는 거임.
노력으로 실력이 개화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데,
소년만화 주인공의 서사에는 그렇게 긴 시간이 허용되지 않음.
즉 소년만화 주인공은 당연히 절대다수가 "소년"인데, 빠르면 1년 안, 길어봐야 4~5년 안에 세계관 모두가 벌벌 떠는 강적과 맞장뜨고 세상을 구하든지 넘버원을 먹든지 해야 함. (물론 바람의 검심의 켄신, 은혼의 긴토키나 사카모토 데이즈의 사카모토 같은 "은퇴한 왕년의 강자"형 주인공도 있긴 하지만.... 얘네도 20대임)
근데 소년 주인공이 아무리 피땀흘려 노력을 한다고 해도, 그 단기간에 자기보다 수십년은 실전에서 구른 베테랑 강자들 눌러가며 최강자가 된다면 그건 처음부터 걔 재능이 쩔어서 가능했던 것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지.
당장 "팔문 열고 마다라 패는 게 가이가 아니라 얘여야 했다"고 왕왕 얘기 듣는 위의 록 리만 봐도, 얘 최종장에서 나이가 17세야.열일곱 살 짜리가 동귀어진 각오했다고 다섯 카게를 가지고 노는 닌자계의 전설을 상대로 선전했다고 하면 그 시점에서 이미 재능이 없다는 말이 나올 수가 없는 대천재지.
그나마 슬램덩크에 홍익현, 신준섭 나오는 것처럼 또래 애들끼리 시합 벌이는 스포츠물이라면 이런 전개가 불가능한 건 아님. 나잇대도 비슷하니 허락된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노력의 밀도를 알아보기 쉽게 제시할 수 있으니까.
스케일 자체도 작은 덕도 크고. 공부로 따지면 하위권을 맴돌던 아이가 정말 피터지게 공부해서 전교일등 먹는다! 가 아주 불가능한 얘기도 아니잖음. 스포츠 시합에서 졌다고 몸이 망가지거나 죽는 것도 아니고.
근데 실전 하나하나가 사생결단인 살벌한 판에서 주인공보다 십년 이상 오래 구른 어른 실력자들이 넘쳐나고, 그 중에서도 톱 오브 톱급이랑 몇 년 안에 싸워 이겨야 하는 배틀물 주인공은 노력하는 범재 콘셉트를 아예 밀 수가 없음. 교복 입은 애가 노벨상 수상한 해외 명문대 교수와 전공배틀 떠서 이긴다는 건데 얘가 4시간 자고 나머지 다 공부에 올인했어도 천재 아니라고는 못하지.
그나마 노력파 콘셉트를 끈덕지게 밀었던 나루토도 1부까지야 제 나이 또래(하쿠, 키바, 네지, 가아라, 키미마로, 사스케)하고만 붙었으니 납득시킬 수 있었던 거지, 아카츠키랑 치고받는 2부 가서는 나선수리검 개발 정도가 노력서사의 한계였고 이후로는 파워업 이벤트로 껑충껑충 강해지는 노선을 택함.
어쩔 수 없음. 루피나 나루토가 한 10년 20년 길게 수련할 수 있으면 숙련된 노력파 강자의 중년간지를 보여줄지 모르겠지만 그런 속편한 삶이 가능할 정도로 소년만화 세상이 평화롭게 굴러가지 않으니까. 그냥 혈통이 쩔어서든, 태어날 때부터 특별한 뭔가가 있든, 세계관 자체가 수련보다 능력가챠가 중요하다고 던지고 넘어가든 "소년이 세상을 구하는" 소년만화에서 천재 아닌 주인공은 나올 수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