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봉요원 69권 540화 관우vs여몽의 좌전 대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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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와 여몽의 역사적인 첫 만남입니다. 화봉요원에서는 원역사보다 한 발 앞서 만나게 되었죠. 화봉요원 속 관우는 ‘가르쳐 주기를 좋아하는 선생’입니다. ‘싹수’가 보이는 인물들에게 종종 훈계를 내리곤 했죠.
하지만 여기는 전장입니다. 그것도 자기를 죽이려고 달려드는 생사대적 여몽 앞이란 말이죠. 그 말대로 관우가 가르침을 청하나 여몽은 쿨하게 씹어버립니다.
관우 : 關羽討教
관우가 가르침을 청하지.
여몽 : 討你個屁!
가르치긴 개뿔!
역사적으로 둘 모두 <춘추좌씨전>을 즐겨 읽었으며 깊이 통달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를 반영하듯 여기서도 둘은 <좌전(左傳)>을 통해 심리전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여몽이 먼저 <좌전>을 써서 포문을 엽니다. 유비의 성 점거행동이 얼마나 그릇된 것인지를 논리적으로 지적하죠.
여몽 : 孫劉輔車相依 唇亡齒寒. 只是一日縱敵 實乃數世之患也!
손유가 보거상의, 순망치한이라 하나, 일일종적은 수세지환야니!
*보거상의 순망치한(輔車相依 唇亡齒寒) : 덧방나무와 바퀴는 서로 의지하고,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
*일일종적 수세지환(一日縱敵 實乃數世) : 하루 적을 놓아준 것이 수 세대의 우환이 된다.
‘순망치한’은 〈노 희공(魯僖公) 5년〉에 나오는 말로서 원전을 모르는 사람도 아는 유명한 사자성어입니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것은 자명한 이치인데, 조조를 막기 위해 동맹을 맺어놓고서 이렇게 성을 뺏는 것은 동맹을 깨고 자멸하는 짓이라고 압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으로 여몽이 언급하는 <좌전>이란 ‘일일종적 수세지환(一日縱敵 數世之患)’입니다. 이건 <좌전> 희공(僖公) 33년에 등장하는 아주 유명한 고사입니다.
춘추시대, 진(晉)나라가 적국인 진(秦)나라의 장수 세 명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런데 진나라 군주가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에 못이겨 이 포로들을 그냥 풀어줍니다. 그 꼴을 보고 있던 진나라의 명장 "선진(先軫)"이 격분하며 땅에 침을 뱉으며 이렇게 소리치죠.
"전사들이 피 흘려 잡은 적을 부인의 말 한마디에 풀어주다니! 하루 적을 놓아준 것이 수 세대의 우환이 될 것입니다(一日縱敵 數世之患也)!"
그리고 그 말대로, 살아서 돌아간 진(秦)장수들은 훗날 군대를 이끌고 다시 쳐들어 오게 되죠.
여몽은 방금 전 “순망치한”을 언급하면서 손-유가 서로 의지하는 동맹임을 천명했습니다. 헌데 바로 뒤에 ‘일일종적 수세지환’을 완전히 다른 내용을 이어붙였죠. 즉, 여몽은 앞의 내용을 완전히 부정하고 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순망치한’인 동맹관계가 깨지기 쉬운 허상에 불과함을 지적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 당장은 조조라는 거대한 적을 막기 위해 양측이 손을 잡았다지만, 여몽이 보기에 유비와 관우의 야심은 반드시 동오의 목을 노릴 것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너희 유비측이 ‘순망치한’운운하는 것도 다 개소리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죠.
그러니 “순망치한”이라는 환상에 낚여 유비군의 탈취행위를 눈감아 줬다간, 더 나아가 유비군이 이렇게 형주의 요지를 차지하고 세력을 키우는 것을 모른 척 방관했다간, 동오의 후손들이 피눈물을 흘리게 되겠죠. 그러니 ‘순망치한’이란 헛소리를 집어치우고 지금 당장 싹을 잘라야 하는 겁니다.
여몽은 현세대 뿐만 아니라, 자신의 뒤를 이을 미래까지 내다보는 훌륭한 전략적 식견을 내보였습니다. 거기에 더해, 손권이 나서기 마뜩찮으니 자신이 독단으로 군대를 움직여 지금 미리 유비라는 싹을 밟아 놓겠다는 비장함까지 곁들여있죠.
그런데 관우는 이에 어떻게 대응할까요? 여몽의 비장한 선언, 훌륭한 논리, 전략적 식견에 무식하게 도(刀)를 내던지는 것으로 대응합니다. 한 번 버텨봐라 라면서.
여몽은 이 청룡언월도를 반사적으로 받아냅니다. 그런데 이 청룡언월도, 삼국지연의보다 몇 배는 더 무거운 도(刀)로 각색이 가해졌습니다. 필부 두 사람 달라붙어야 겨우 드는 무기입니다.
그 무게에 짓눌려 낑낑대는 여몽이지만, 병사들이 다 보는 앞에서 체면이 말이 아니죠. 때문에 여몽은 <좌전> 인용을 통해 새로운 프레임을 짭니다. 관우의 ‘공격’을 ‘항복의사’로 바꿔버리죠.
“내가 정의의 이름으로 널 꾸짖으니(다행불의) 네가 알아서 무기를 내던지는구나. 내 충고를 아주 물흐르듯 잘 받아들이네(종선여유)!”라고.
너희는 망할 짓만 하는 놈들인데, 내가 꾸짖음을 듣고 감복해서는 얌전히 무장을 해제했으니 칭찬해준다는 허세이자 비꼬기인 것이죠. 명분싸움에 밀리지 않으려는 자존심 싸움입니다.
그런데 관우는 어떻게 대답합니까?
관우 : 君子之言 信而有徵
군자지인 신이유징이니.
*군자지인 신이유징 : 군자의 말은 증명할 수 있기에 믿을 수 있다.
관우 : 將軍 量力而動
장군, 양력이동하시오.
*양력이동 : 자신의 힘을 헤아리고 움직이다.
관우의 대사, 군자지인 신이유징(君子之言 信而有徵)의 원뜻은 “군자의 말은 믿음직하며, 반드시 증거가 있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두 가지로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은 직접적으로 여몽의 허세를 박살내는 용도입니다. 여몽이 “관우 이 자식 내 말 잘 듣네”하고 되도 않는 여유를 부리자, 관우가 <좌전>으로 응대합니다.
“창 던진 행위가 너한테 쫄아서 무장을 해제한 거라고? 그럼 그 말대로 그 무기 한 번 끝까지 버텨서 네 허세가 맞다는 걸 증명해보아라”. 여몽 본인이 “관우가 나한테 겁먹어서 무기를 내려놓았다”라고 선언했으니, 자존심상 여몽은 창을 내려놓을 수가 없게 되었죠. 결국 여몽은 <좌전>으로 도덕적 우위를 차지하려다 되려 관우의 <좌전>의 덫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둘째는 여몽의 명분을 박살내는데 쓰입니다. 여몽은 관우에게 ‘순망치한’이니 ‘불의를 저지르면 망한다(다행불의 필자폐)’를 언급하며 도덕적이고 원론적인 명분을 내세웠습니다. 이에 관우는 말로 길게 반박하지 않아요. 대신 엄청난 무게의 청룡언월도를 던져버리죠.
여몽이 <좌전>의 문구를 빌려 정당성을 비판했지만, 관우는 무엇이 옳은지 따지는 대신 칼을 던짐으로서 프레임을 180도 뒤바꿔 버린 겁니다. 윤리의 영역을 힘과 현실의 영역으로 재전환 시켜버렸어요. 관우가 지닌 압도적인 힘과, 그 힘 앞에서 여몽이 쩔쩔매고 있는 현실, 그것이 바로 관우가 말하는 증거徵인 셈이죠.
따라서 관우가 말한 “신이유정(信而有徵)”이란 네 말에 ‘증명해야 할 힘徵’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즉, 관우의 반박은 이런 겁니다. 여몽이 입으로 정의와 명분을 떠든다 한들, 힘徵이 제대로 뒷받침되지 않은 이상 빈말에 불과할 뿐이라고. 진정한 군자의 말은 현실에서 증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입만 살아서 떠들지 말고, 네가 옳다는 것을 네 힘으로 증명해보라는 현실주의자의 팩트 폭력이죠. 도덕적으로 틀렸는지 아닌지는 힘 있는 자가 증명하는 겁니다. 칼 하나도 버티지 못하면서 감히 옳고 그름을 논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현실주의자인 관우는, 자신의 권리와 정당성을 청룡언월도의 무게(힘)으로 증명해보였습니다. 여몽 역시 자신의 자세로 관우의 살아있는 증거徵가 되어주죠. 여몽은 도(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땅에 엉거주춤 주저앉을 뻔합니다. 관우는 말로 꾸짖는 겁니다. 군자의 말은 반드시 증거가 있는 법인데 고작 칼 하나에 짓눌려 헐떡이는 그 굴욕적인 모습 자체가, 동오가 유비의 무력과 무게를 감당할 수 없는 완벽하고 시작적인 증거徵라고.
여몽의 논리와 지적허영심을 압도적인 무력과 실력 격차로 찍어누르는 순간, 여몽은 더 이상 말대꾸를 하지 못합니다. 관우의 말대로 증거徵를 내보여야 하죠.
뒤이어 관우는 <좌전> 은공11년에 나오는 ‘양력이동(量力而動)’ 언급함으로서 여몽에게 세 가지 차원에서 묵직한 경고를 날립니다.
첫번째는 물리적 차원의 조롱입니다. 가장 직관적인 의미죠. 네 근력으로는 내 칼을 감당할 수 없다는 조롱. 힘에 부치면 억지로 들고 있지 말고 내려놓으라는 직설적인 조롱입니다.
둘째는 군사적 차원의 경고입니다. 칼(刀)은 유비군의 군사력을 상징합니다. 관우는 여몽이 보일 군사적 움직임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가볍게 날리는 공격도 감당하지 못하면서 어딜 감히 덤비느냐고, 주제넘게 군사적 도발을 하지 말라 압박하고 있죠.
셋째는 더욱 큰 차원으로 넘어갑니다. 바로 정치적 차원의 압박입니다. 관우는 칼을 들이대며 ‘죽여버리겠다’라고 직접적인 협박을 가하지 않습니다. 대신 저 무거움을 견식하게 함으로서 양측의 ‘체급차’가 얼마나 나는지를 명확히 했죠. 일개 장수인 관우의 칼날에도 짓눌렸는데, 한실의 정통성을 이은 ‘황숙’의 무게는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칼을 제대로 받아내지 못한 순간, 동오는 유비에게 미치지 못함을 스스로 선언해 버린 꼴이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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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69권까지 오게되었네요. 분명 엊그제만해도 원서로 떠듬떠듬 봤던 것만 같은데 이렇게 질좋은 번역으로 다시 보게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길찾기 출판사 관계자님들, 번역에 힘써주신 번역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
화봉요원이란 멋진 작품을 한국어로 볼 수 있게 되어 너무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