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의 아이에서 말하는 희생이란?
본문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극장판 애니 <날씨의 아이>.
트롤리 딜레마에서 대를 버리고 소를 구한다는 파격적인 결말의 애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을 재밌게 본 사람들은 입을 모아 동의한다.
신카이 마코토 필터가 씌워져서 그렇지, 호다카부터 가출 청소년에다,
히나의 삶은 지옥 맨 밑바닥에 처박힌 시궁창 인생이었고,
그 원인을 제공한 도쿄를 구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고.
사실 이 영화의 주제 자체가,
"사회 어딘가에선 누군가가 계속 짓밟히고 사라지는데 왜 너희들은 모르는 거냐" 는 사회고발이라...
하지만 난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고 싶다.
그럼, 도쿄가 만약 선량한 사람들이 감사하며 사는 도시였다면, 히나는 희생됐어도 되는가?
그건 당연히 아니지.
애초에 남을 위해 희생할 의무 따위는 그 누구에게도 없으니까.
실제로 도쿄에는 선량한 사람들도 많이 살고 있었다.
이 거인으로 변신할 것 같은 목소리의 경찰도 입장이 그렇지 바른 사람이었고.
도쿄가 단지 수몰되어 마땅한 장소는 아니었다는 이야기.
하지만 그런다 한들 희생이란 건 어떤 상황에서도 미화될 수 없다.
그렌라간에서도 나오듯이 죽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실제로 일본, 그리고 인류 역사 내에서 희생이란 게 얼마나 악용되어 왔는지 생각하면,
그리고 수많은 작품에서 희생이란 것을 멋지게 포장하려는 걸 생각하면,
이 희생이란 가치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시도가 특별한 것.
실제로 호다카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자기의 행보에 의문을 보임.
정말 자기가 세상을 바꾼 것이 맞을까. 맞다면 이 모든 건 누구의 잘못인가...
하지만 기도하는 히나를 보고서 마음을 다잡지.
자신은 온전히 스스로의 선택으로 히나를 구했고,
거기에 대해서 그 어떤 변명도 이유도 대지 않겠다고.
왜냐하면 처음부터 호다카와 히나에겐 세상을 위해 희생할 의무가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