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트)키리츠구가 안심했다고 한 이유
본문
[그리고, 그런 몇번인가의 무리 때문인지 최근에는 키리츠구도, 자신이 죽을 때가 다가왔다는 것을 막연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어차피, 그 검은 진흙의 저주를 몸에 받아들인 시점에서, 여명은 이미 한정되었던 것이겠지.
최근에는 집에 틀어박혀 한가롭게 지내면서, 추억에 잠기는 일이 잦아졌다.
자신의 인생은, 대체 무엇이었던 것일까 하고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지금도 시로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달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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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키리츠구는 앙그라마이뉴의 저주로 시한부가 된 몸이 끝나가 움직이기도 힘들기에
그저 자신의 인생과 이상을 자조하며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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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나는 정의의 사자를 동경하고 있었지.」
문득, 그런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옛날, 아득한 그 옛날부터 물 속에 잠겨있던 난파선과도 같이, 오랫동안 줄곧 내팽겨친 채 잊어버리고 있던 말이었다.
그렇다. 언제였던가, 자신은 누군가에게 그렇게 말하려 했고, 결국 말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것은 대체 언젯적 일이었을까.
하지만, 그런 키리츠구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시로는 갑자기 기분나쁜 듯한 얼굴이 된다.
「뭐야 그거. 동경하고 있었다니, 포기한거야?」
시로는, 키리츠구가 자신을 부정하는 듯한 말을 싫어한다.
그는 키리츠구라는 남자에게 깊은 동경을 품고 있다.
그리고 그런 마음에 대해, 키리츠구는 내심으로 언제나 부끄러운 감정을 끌어안고 있었다.
소년은 의붓아버지를 누구보다도 위대한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에미야 키리츠구의 과거를 그 생애가 가져다온 재앙과 상실을 무엇하나 알지도 못한채, 키리츠구를 목표로 삼아버리고 있다.
시로 안에 있는 자기희생과 정의감은, 어떤 종류의 삐뚤어짐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과도한 것이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것은, 키리츠구에 대한 어긋난 선망이 발단이 된 듯 하다.
부자(父子)로 지내왔던 세월 중에 유일한 후회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다.
시로는 키리츠구처럼 되고 싶다고 말했다.
키리츠구가 걸어왔던 길에 이르고 싶어한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를 일깨워 주는 것이, 끝끝내 키리츠구에게는 불가능했다.
만약 시로가 키리츠구와 같은 인생을 살다, 같은 식으로 망가져 버린다면, 이 5년 간의 따스하던 나날들 조차도, 결과적으로 저주였던 것이 되어 버리는데도.
포기한 것이냐고, 시로는 묻는다.
그 물음이 너무나도 아프게 가슴을 찌른다.
그렇다. 순순히 포기했었더라면, 얼마나 많은 구원이 있었을까.
키리츠구는 머나먼 달을 바라보는 체 하며, 비통한 마음을 쓴웃음으로 얼버무린다.
「응, 유감이지만 말야. 히어로는 기간한정이라서, 어른이 되면 그렇게 자기를 밝히기가 어려워지는 거야. 그렇다는걸, 좀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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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시로는 구해졌던 순간의 각인된 기억 덕에 무슨 말을 해도 키리츠구의 길을 가겠다고 했음
키리츠구는 그런 시로의 생각을 바꿔보려 했지만 결국 죽음을 앞둔 순간까지 바꿀수 없었고
그것을 시로와 부자관계의 유일한 후회로 생각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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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정말로, 어쩔 수 없지.」
키리츠구도 또한, 애통한 심정을 담아 맞장구친다.
어쩔 수 없다, 고
그런 말로는 아무런 조의(弔意)도, 보상(報償)도 되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저 먼 하늘의 달을 바라본다.
“아아, 정말로, 좋은 달이다.”
이렇게나 달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밤은, 태어나서 처음일지도 모른다.
이런 경치를, 키리츠구와 함께, 시로가 추억 속에 새겨넣어 준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이 기뻤다.
「응, 어쩔 수 없으니까 내가 대신해 줄게」
소년은, 청초하게 밤을 밝히는 달빛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말투로 맹세했다.
일찍이 키리츠구가 동경했고, 포기했던 것이 “되어 주겠다”고.
그 순간, 퍼뜩 깨달았다.
그도 마찬가지로, 예전에 맹세하려고 했던 것이다.
누구보다도 소중한 사람에게, 그 말을 전하려고 했다.
그 때 가슴에 품었던 자랑스러움을, 결코 놓치지 않겠다고 여겼던 빛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바로 지금 이 순간까지.
「할아버지는 어른이니까 이미 무리겠지만, 나라면 괜찮잖아. 맡겨두라구, 할아버지의 꿈은」
시로는 맹세의 말을 이어나간다.
오늘밤 이 경치와 함께, 잊을 수도 없는 추억으로써, 자신의 가슴에 새겨넣어 간다.
그렇다.
이렇게도 아름다운 달 아래서라면 그는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에미야 시로의 처음 그 마음, 그 고귀하고도 무구한 기원의 형태는, 분명 언제까지고 아름다운 것으로써, 그 가슴에서 계속 살아숨쉬게 될 것이다.
언젠가 소년은, 어리석은 의붓아버지의 이상을 이어받아, 수많은 탄식을 알게 될 것이다. 한없는 절망을 맛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이 달밤의 추억이 그의 안에 남아있는 한, 분명 그는 지금 이 순간의 자신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두려움도 모르고, 슬픔도 모르고, 그저 동경만을 가슴에 감추고서 강하게 살아가려고 했던 어린 날의 마음으로.
그것은 언제부턴가 처음의 자신을 잊어버리고, 그저 마모되어 갈 수 밖에 없었던 키리츠구로서는, 바랄 수도 없었던 구제다.
「그러니. 아아 안심했다.」
시로(그)는, 설사 이런 자신처럼 살아가게 되더라도, 이런 자신처럼 잘못을 범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이해(理解)하고서, 가슴 속 모든 상처가 사라져가는 것을 느끼면서,
에미야 키리츠구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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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마지막 시로가 맹세하는 것을 보고
이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면 설령 자기와 같은 절망을 겪더라도 추억을 떠올려 빛나던 시절의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자신의 삶을 따라가더라도 자기와 같은 잘못을, 말로를 범하진 않으리라 이해하며 안심하고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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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생각대로
마모될대로 마모된 아처조차 그날의 기억을 온전히 떠올리자 마모된 맹세가 되살아나며
과거 빛나던 그시절로 돌아갈 수 있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