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권위주의, 독재]: 무솔리니에서 트럼프까지
본문
저자 - 루스 벤 기앳
역자 - 박은선
출판사 - 글항아리
쪽수 - 552쪽
가격 - 28,000원 (정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티머시 스나이더, 대니얼 지블랫 강력 추천 ★
독재자·권위주의 정치가의 각본 해부집
단골 메뉴는 경제 참사와 좌파로 인한 대재앙
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독재자 혹은 권위주의 정치가들이 은밀히 보관하고 있던 각본에 대한 해부집이다. 독재로 가는 권력자들은 늘 각본을 갖고 있었다. 선배 정치인들의 매뉴얼을 참조해 자신의 정치에 활용하는 것은 20세기의 무솔리니에서 21세기의 트럼프까지 이어졌다. 설득의 힘을 잃은 이들은 통제와 힘을 주로 사용한다. ‘예외’ 상태를 ‘규칙’으로 만들고, 이것을 상당 기간 정상 상태처럼 유지하지만, 결국 자기 자신과 세계가 함께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극우, 권위주의, 독재』가 힘과 이데올로기에 관한 책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파국을 예고하는 책인 이유다.
이탈리아 파시즘 연구의 권위자인 저자는 트럼프의 첫 집권 말기인 2020년에 이 책을 펴냈다. 이후 이 책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계속 읽히는 이유는 현재 전 세계 정치의 극우화와 맞물려 있다. 즉 권위주의 정권뿐 아니라 민주주의 정권에서도 극우 정치인과 우파 포퓰리스트, 독재자들의 출현은 흔한 현상이며, 트럼프 집권 2기에 접어들면서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게다가 “쿠데타는 언제 어디서든 경제 참사 혹은 좌파로 인한 대재앙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자행된다”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게 하는 충격적인 일이나 중대한 사건은 독재적 역사를 촉진한다” “사람들은 심각한 부실 운영이나 탄핵, 국제적 망신을 겪으면서도 그 지도자 편에 서는 경향이 있다”와 같은 저자의 분석은 오늘날 한국의 상황에도 그대로 들어맞는다.
저자는 야심차게 독재자가 어떻게 민주주의 정권을 손상시키는지 전면적인 조사를 벌인다. 독재자의 출현에는 사회적·경제적 조건도 영향을 미치지만, 이 책은 독재자의 행동에 초점을 맞춘다. 독재 성향의 정치인들은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도덕적·제도적 힘이 부족한 곳을 파고들어 민주주의의 기반을 흔드는 데 성공한다. 방법은 주로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파시스트의 정권 탈취, 둘째 군사 쿠데타, 셋째 느린 속도로 진행되는 민주주의에 대한 침식이다. 지금 시대에는 세 번째 유형이 가장 흔하다.
저자는 연대기적 서술 방식을 택하지 않고 독재자 각본의 구성 요소를 A부터 Z까지 파고든다. 17명의 주인공이 있고, 그중 8명이 서사를 지배한다. 8명 가운데 카다피를 빼고는 모두 말하자면 민주적 체제에서 권력을 잡았다. 저자의 분석은 특히 트럼프와 무솔리니를 다룰 때 최고의 기량을 드러낸다.
독재자 통치에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이들이 폭력을 통해 승리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유혹하고, 호소하고, 카리스마를 발휘한다. 통치의 도구는 네 가지다. 첫째는 선전이다. 지도자가 언론에 발빠르게 트윗을 통해 대항하거나 자기 언론사를 통해 자기 입장을 뿌리는 걸 말한다. 둘째는 부패다. 사람들을 매수하고 순종적인 공무원을 확보한다. 셋째는 폭력이다. 협박과 위협에서 신체적 상해와 비판자 제거에 이르는 과정을 말한다. 넷째는 마초주의다. 지도자가 국가의 구원자라는 인식이다.
특히 독재자의 남성성 과시는 정치적 정당화를 꾀하는 중요한 전략이다. 1935년 무솔리니는 웃통을 벗고 밀을 타작하는 몸을 과시했고, 2007년 푸틴은 헴치크강에서 상의 탈의를 하고 낚시하는 모습을 공개했는데 마치 보디빌더 같았다. 이것은 성적 에너지를 자극하는 능력의 일부로, 대중은 남녀 상관없이 이런 특별한 몸에 가까이 다가가려 한다. 예를 들어 몬타넬리라는 이탈리아인은 “무솔리니의 시선이 닿으면 우린 그저 그 앞에서 벌거벗을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흉내 낼 수 없는 지도자의 본질을 따르기 위해 옷을 찢고 그 경외감에 몸을 떠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이 책은 권력자의 맞은편에 있는 추종자 역시 파고든다. 어떤 때에 사람들은 자신과 국가가 큰 대가를 치르는 것과 상관없이 독재자에게 협력하는 걸까? 게다가 독재자들이 여성 혐오적일 때조차 일부 여성은 왜 그들을 좋아하는 걸까?
저자가 분석한 추종자들의 공통점을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그들이 그를 믿는 이유는 그를 믿기 때문이다.
·지도자가 미디어 정치에 능숙할수록 추종자들은 그를 더 진실하다고 여긴다.
·결코 확신에 찬 신념가가 아니다. 그들은 더이상 참과 거짓, 사실과 허구를 구분하지 않는다.
·그들은 뜨거운 논란거리에 관심을 쏟고, 권력 남용을 문제 삼지 않는다.
이러한 심리 상태는 체계와 심층적으로 얽힌다.
현대의 수많은 정치인은 포퓰리즘 정책을 구사한다. 포퓰리즘이 꼭 독재적인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독재자가 포퓰리즘적 미사여구를 동원해왔기에 둘은 종종 혼동된다. 이들은 불안과 공포를 선취하고, 흑백 논리를 동원하며, 국민에게 숙고보다는 행동을 촉구한다. 공포를 자극하는 데 있어 단골 메뉴는 두 가지다. 경제 참사 그리고 좌파로 인한 대재앙. 이를테면 베를루스코니는 자신을 ‘이탈리아 정치의 예수’라고 주장했는데, 좌파 언론과 사법부에 의해 그 자신이 순교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대중을 불안하게 하고 다음에 뭘 해야 할지 모르게 만드는 것 또한 이들의 공식이다. “빈말 따위나 할 시간은 이제 끝났다. 지금은 행동할 시간이다.” 트럼프는 이렇게 말하면서 ‘무無이성 행동’을 촉구했다.
모든 통치자가 권력을 얻기 위해 탄압이라는 수단을 쓰진 않는다. 하지만 저자는 이들 권력자가 하나같이 협박의 기술에 능통하다고 본다. 공직에 출마하면서 개인의 폭력적 능력에 대해 큰소리치는 것 역시 21세기에 흔히 보이는 전략이다. 예컨대 2016년 1월 트럼프는 뉴욕 5번가에서 당장 누군가를 총으로 쏴도 단 한 명의 추종자도 잃지 않을 거라고 호언장담했다.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게 하는 충격적인 일은 독재적 역사를 촉진한다. 벤야민은 일시적 비상사태가 “더 이상 예외가 아닌 규칙”이 됨으로써 정상적인 것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는데, 지난 한 세기 동안 그 재난을 활용하는 것은 독재자가 지녀야 할 기술이었다.
독재자는 국가의 편집장 역할을 자임한다
대부분의 국가는 그 국가가 받아 마땅한 불한당을 얻는다
이 책은 유럽의 극우 운동이 부상하는 맥락에서 트럼프를 다룬 제럴딘 슈바르츠의 책이나 미국의 독재자들과 비교한 에릭 포스너의 책보다 훨씬 더 넓은 지리적 범위를 다루면서 통찰력은 더 예리하다는 평을 얻었다. 특히 다른 책들에서 공포, 폭력, 선전, 부패를 독재자 통치의 주요 수단으로 보는 반면, 저자는 트럼프가 팬데믹 기간에 각 주가 의료 장비를 놓고 경쟁하게 만든 것처럼 남성 지도자들이 ‘분할 통치’ 전술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트럼프가 해온 거의 모든 일은 독재자의 각본에서 나온 것이다.
독재 국가 프로젝트는 일반적으로 세 가지의 시간 프레임 및 마음 상태를 활용한다. 유토피아, 향수, 위기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 “국가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독재자의 약속은 현대 권위주의 통치의 ‘접착제’가 되는데, 이는 현재에 대한 암울한 전망, 장밋빛 미래에 대한 비전이 향수에 결합된 것이다. 가령 푸틴은 소비에트 시대의 향수를 불러일으켰고, 트럼프는 첫 취임 연설에서 미국을 “온 나라에 낡아빠진 공장들이 묘비처럼 흩어져 있는” 황량한 곳으로 묘사하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고자 했다.
이 책은 ‘인물’에 초점을 맞춰 분석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 지도자를 ‘위인’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이들 대부분은 징징대고, 불안정하고, 가학적이고, 그다지 똑똑하지 않다(트럼프가 전형적인 예다). 이들은 정치적 천재성보다는 교활함을 지녔고, 의외로 게으르다. 히틀러가 그랬듯이 이들은 자신이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나눈 사람의 의견을 정책으로 삼곤 한다. 무솔리니는 하급자들이 표시해준 본인 관련 기사들을 주로 읽었고, 푸틴 역시 “지위 상실, 분노, 존경받고자 하는 욕구, 취약성”에 관한 자신의 집착을 국가 정책에 반영함으로써 일인 독재의 혈통을 이어가고 있다.
모든 독재자는 전임자의 업적을 기반으로 한다. 히틀러가 무솔리니의 행동을 주의 깊게 지켜봤듯이 카다피도 1952년 이집트 왕정을 전복한 나세르 중령으로부터 배웠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레이건과 깅리치가 ‘좀더 급진적인 형태의 보수주의’를 찾는 유럽인들에게 모델이 되었다. 1994년 깅리치의 ‘미국과의 계약’은 ‘이탈리아의 깅리치’라고 불렸던 피니와 프랑스 국민전선이 1995년에 내놓은 문건 ‘프랑스를 위한 프랑스 국민과의 계약’, 그리고 베를루스코니의 2001년 ‘이탈리아 국민과의 계약’에 영향을 미쳤다.
트럼프와 그의 롤모델 사이의 유사점은 끝이 없다. 저자는 트럼프가 신나치 선전을 리트윗하고, 힐러리 클린턴의 수감을 요구하며, 집회에서 추종자들을 이끌고 충성 맹세를 하는 데서 선배 독재자들의 모습이 어른거린다고 말한다. 트럼프가 멕시코인에 대해 말하는 방식은 히틀러가 유대인에 대해 말하거나 베를루스코니가 아프리카인에 대해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탈리아의 총리 베를루스코니는 무솔리니의 창백한 모방자에 불과했다.
최종적으로 중요한 것은 언제나 경제다. 푸틴과 올리가키, 히틀러와 독일 기업가들, 트럼프와 월가의 엘리트 등 모든 권위주의 정권은 대기업과 동맹을 맺어왔다. 저자는 독일의 사업가 한프슈탱글이 히틀러를 사교계 인사들에게 소개해주었듯이, 블랙스톤의 최고경영자 슈바르츠만이 트럼프와 그의 공화당에 수천만 달러를 기부함으로써 트럼프의 합법화를 도왔다고 지적한다. 1926년 무솔리니가 국제적 정당성과 경제 원조를 절실히 필요로 했을 때 그를 구출한 인물은 JP 모건의 파트너였던 토머스 러몬트로, 미국 정부로부터 1억 달러의 대출을 중개해주었다.
대부분의 역사가는 히틀러의 집권을 설명할 때 바이마르 공화국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대공황과 가혹한 베르사유 협정으로 인한 엄청난 도전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카다피와 아민의 경우 제국주의가 과거 식민지 국가를 분열시키고 트라우마를 남겼다는 점에서 그들의 집권 계기를 찾는다. 푸틴에 대해서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관리하지 못한 러시아의 실패와 초강대국 지위에서 강등된 것에 주목한다. 그리고 트럼프에 대해서는 미국의 불평등 심화, 인종차별의 깊고 유독한 유산, 특수 이해관계로 인해 마비된 정치 시스템 등이 주요인으로 지적된다. 반면 저자가 지목하는 독재자 힘의 원천은 다른 곳에 있다. 즉 독재자끼리 서로를 참조하고 모방하며 지지하는 힘이 권력 획득과 체제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정치인은 아래와 같은 전략을 공통되게 구사한다.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면 사회를 분열시켜야 한다.
·스스로 언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한다. 국가의 편집장 역할을 자임한다.
·국가 자원 약탈에 방해되는 기후변화 관련 과학은 억압한다.
·마지막으로 이야기 나눈 사람의 의견을 국가 정책에 반영한다.
·TV나 소셜미디어에 나오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거나 다름없다.
이런 체제하에서 어떤 이들은 권위주의적 지도자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저항하며, 또 다른 이들은 두려워 순응에 빠지는 모습을 보인다. 독재자의 각본집이 어떤 곳에서는 성공하는 반면, 다른 곳에서는 실패하는 것은 단순히 저항의 도덕적, 제도적 강도의 문제가 아니다. 뿌리 깊은 민주주의 구조와 습관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현재 정치체제의 한계 내에서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강력한 사회 세력 때문이기도 하다. 더욱이 요즘 시대에는 SNS를 통한 프로파간다를 가벼이 볼 수 없다.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극우주의 운동들에서 프로파간다는, 그것이 곧 정치의 실체를 이룬다고 할 만큼 사태의 본질 자체”라고 경고했다. 이들은 언어까지 빠르게 자신들의 도구로 장악해나가고 있다. “어떤 이들은 죽을 것이고 사람들은 그 죽음을 잊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옳은 것, 선한 것, 진보하는 것이 승리할 것이다.” 이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독재자 카다피의 철학이었다. 지금 많은 민주주의 국가는 “그 국가가 받아 마땅한 불한당을 얻”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경고다.
목 차
- 등장인물
시작하는 말
제1부 권력으로 가는 길
1장 파시스트 점령
2장 군사 쿠데타
3장 새로운 독재자의 출현
제2부 통치의 수단
4장 더 위대한 국가
5장 프로파간다
6장 정력
7장 부패
8장 폭력
제3부 권력의 상실
9장 저항
10장 최후
맺는 말
추 천 사
지속적인 연구와 디테일에 대한 안목으로 저자는 특정 카리스마가 어떻게 정치적 재앙을 초래하는지 시의적절하게 분석한다. 또한 카리스마에 저항하는 법, 민주주의를 재건하는 데 필요한 덕목에 대한 귀중한 힌트를 제시한다.
이 책은 파시스트 시대의 폭군, 냉전 시대의 살인적인 독재자, 그리고 현대의 폭군 후보에 대한 묘사를 통해 독재자들이 어떻게 폭력, 유혹, 부패를 활용했는지 흥미롭고도 통찰력 있게 분석한다.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이 책은 오늘날의 논픽션들이 너무 자주 결여하고 있는 리듬과 운율을 지니고 있다.
깊은 통찰력으로 민주주의 정치 심리학에 대한 훌륭한 기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