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을 팝니다]: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우리 마음을 병들게 하는가
본문
저자 - 제임스 데이비스
역자 - 이승연
출판사 - 사월의책
쪽수 - 376쪽
가격 - 23,000원 (정가)
■ 고통이 상품이 될 때 연대의 가능성은 사라진다
- 왜 우리의 정신 건강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악화하고 있는 것일까?
- 정신적 고통이 치료의 대상이 된 것은 정말 진보적인 변화였을까?
‘우울증’ ‘ADHD’ 같은 정신질환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사회 문제가 되었다. 우울증으로 진료를 받는 사람은 한 해에만 100만 명에 달하며, ‘공부 잘하는 약’으로 통하는 ADHD 치료제는 지난 5년간 처방 건수가 3배 이상 급격히 증가했다. 그러나 각종 약물 처방에도 불구하고 정신질환을 겪는 환자 수는 갈수록 늘어나기만 하고 있다. 왜 우리의 정신 건강은 나아지고 않고 오히려 악화하고 있는 것일까?
영국 의료인류학자 제임스 데이비스는 이 책 『정신병을 팝니다』에서 ‘고통을 이해하는 문화’에 일어난 거대한 변동이 정신 건강 위기의 근본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정신질환이 약물로 치료해야 하는 한 개인의 뇌의 문제로만 비춰질 때, 정신적 고통을 둘러싼 맥락은 눈앞에서 사라지고 만다. 우리 마음을 병들게 하는 실업, 경쟁적 교육, 물질주의 세계관 등이 고통의 사회적 원인임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개인화하고 의료화하고 상품화하는 사회 속에서 정신질환 환자 수는 늘어나지만 고통을 경유한 정치적 연대의 가능성은 오히려 축소되고 마는 것이다.
저자는 임상 상담의 현장을 찾아가고 통계 분석을 제시할 뿐 아니라 정치인, 정신의학자, 인류학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신자유주의 사회와 정신질환의 관계를 하나하나 파헤쳐간다. 이 책은 우리 사회의 실패로 인해 발생하는 고통이 어떻게 정신질환으로 정의되어 왔는지, 그리고 정신질환에 대한 개인주의적 관점이 정부와 거대 기업에 의해 어떻게 장려되어 왔는지, 어째서 이것이 부적절하며 위험한지 보여준다. 나아가 우리가 고통을 생각하는 방식을 변화시켜온 신자유주의 사회와 치료적 세계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이야기한다.
■ 왜 우리의 정신 건강은 갈수록 나빠지기만 하는가?
지난 수십 년간 정신질환의 범위는 공격적으로 확대되어 왔다. 이에 따라 이전에는 질병으로 이해되지 않았던 감정이 질병으로 이해되는 과정인 ‘의료화’ 또한 급속히 진행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정신적 고통 대다수가 부당하게 의료화되고, 병리화되며, 투약의 대상이 되는 결과를 낳았다. 학교에서의 집중력 부족, 일터에서의 실적 부진 등은 최근 정신질환의 증상이라고 의학적으로 재분류된 수많은 고통 중 일부에 불과하다.
저자가 2장 〈빚과 약물을 확산하는 새로운 문화〉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1960~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우울증’은 소수에게만 해당되는 질병이자, 별다른 치료 없이도 자연적으로 해소 호전되는 질병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특히 SSRIs 계열 항우울제가 개발되면서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 같은 질병, 즉 개인의 내부에 위치한 생물학적 질병이자 그렇기에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질병으로 이해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이해 방식의 확산과 함께 치료를 요하는 ‘우울증 환자’의 범위 또한 빠르게 확장되어 왔다.
그러나 이처럼 심리학에 관한 담론이 활발해지고 정신과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 또한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정신질환 환자의 수는 지속해서 증가해왔다. 일차적으로 이는 별다른 과학적 근거가 없음에도 정신질환의 범주를 공격적으로 확대해온 제약업계와 정신의학계의 이익 추구 행위와 관련된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또한 개인을 사회로부터 고립시키는 개인주의적이고 시장화된 해법을 옹호함으로써 개인의 생산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신자유주의 사회’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요 주장이다.
실제로 정신 건강 산업은 정신적 고통을 개인이 처한 고통스러운 사회적 상황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뇌 질환으로 개념화함으로써 고통을 ‘탈정치화’했고, 신뢰할 만한 증거가 없는데도 고통을 뇌의 결함이나 유전자의 결함으로 돌림으로써 고통을 ‘병리화’했으며, 고통을 더 적절한 약을 복용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전환함으로써 고통을 ‘상품화’했다. 문제는 이러한 시각이, 약물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약물 투여를 장려할 뿐만 아니라, 빈곤, 차별, 외로움과 같은 사회적 요인에 대한 관심을 흐리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약물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장기적으로는 이득보다 해악과 부작용이 더 많다는 사실 또한 실증적 연구 결과를 통해 밝혀지고 있는 상황이다(2장 참조).
저자는 이러한 문제들을 자신이 상담사로 일했을 당시의 경험들과 여타 임상 현장의 사례들을 통해 경험적으로 보여주고 과학적 연구와 통계자료를 제시할 뿐만 아니라,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정신적 고통을 철저하게 개인의 뇌 문제로 구성하는 정신의학적 관점의 비과학성과 해악을 폭로한다. 나아가 이러한 치료적 시각이 실제적 효과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 사회적 지지를 받게 된 사회문화적이고 경제적인 이유를 탐색한다.
■ 고통을 탈정치화하고 개인화하는 사회의 출현
신자유주의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개인 또한 하나의 상품이 된다는 것으로, 개인들은 진정한 자아의 실현이라는 명목하에 끊임없이 현대의 경제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과 이미지를 계발할 것을 요구받는다. 저자가 3장 〈현대적 노동이 낳은 새로운 불만〉에서 포착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현상이다. 새로운 자본주의는 저자가 9장 〈생산성을 비인간화하기〉에서 탐구하고 있는 것과 같은 자아실현, 창의성, 개인성 등의 자율성에 대한 요구를 신자유주의적인 ‘자유’를 실천하라는 요구로 번안하여, 노동에 필요한 자질을 스스로 계발하게 한다. 이러한 체제에서 인간의 감정은 또 다른 내밀한 자기감시와 향상의 대상이며, 심리적 고통이란 효율적이고 경제적으로 관리되어야만 하는 무언가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점에서 정신질환이 신자유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상, 즉 지치지 않으며, 항상 활동적이고, 생산적이며, 긍정적인 인간상의 반대항을 포함하게끔 구성되곤 한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사실이다. 저자가 9장 〈생산성을 비인간화하기〉에서 지적하듯, 『정신 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DSM)의 총괄기능척도는 낮은 노동 생산성과 업무 능력을 정신 장애의 주요 특징들 중 하나로 개념화한다. 일에 대한 지속적인 주의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의 부재, 결정의 어려움, 피로함, 정신 운동의 지연을 우울 삽화의 주된 특징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이처럼 현대의 정신의학적, 심리학적 세계관에서는 오로지 개인의 병리만이 존재하며, 병리적인 인간이 된다는 것의 의미는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인간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4장 〈직장 복귀를 위한 새로운 심리치료〉가 보여주듯 가장 ‘가성비’ 좋게 노동자들을 회복시키는, 즉 일터로 돌려보내는 것이 치료의 목적으로 이해되고, 5장 〈실업의 새로운 원인〉이 보여주듯 실업의 원인을 개인의 성격적 결함에서 찾는 정신의학적 개입이 도입되며, 6장 〈교육과 신관리주의의 부상〉이 보여주듯 아이들의 시험 스트레스마저 의료화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 사회에서 ‘공부 잘하는 약’으로 통하는 ADHD 치료제가 지난 5년간 처방 건수가 3배 이상 증가하고, 청소년 정신질환 환자 수가 갈수록 늘어나기만 하는 근본 이유일 것이다.
■ 고통을 치료 대상으로 삼는 신자유주의 사회를 넘어서
우울증 환자의 ‘탈낙인화’를 주장하는 이들은 우울증은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마음의 감기’이며, 그렇기에 누구나 쉽게 ‘우울증’ 진단과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무리 질병에 걸린 것은 당신 잘못이 아니라며 탈낙인화 캠페인을 펼친다 한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질병의 환자로 진단된다는 것의 의미는 결국 ‘회복이 무엇보다 개인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다. 우울증에 대한 낙인이 없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더 많은 사람이 우울증 진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며, 그 결과 더 많은 치료 상품을 소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8장 〈물질주의는 이제 그만〉의 주제가 물질주의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듯 치료적 세계관은 정신적 고통을 감기처럼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질병, 뇌의 세로토닌 문제로 개념화한다. 그러나 우울증이 정상적인 질병이고 누구나 겪는 질병이라면, 현대 사회에 고통이 만연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질문할 필요가 없는 것일까? 고통받는 상태가 정상이라며 얄팍한 위안을 제공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더 적게 고통받는 사회를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정신의학이 내세우는 세계관은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깊이 손상시키며, 가장 탈정치화되고 소외된 우울증에 대한 이해의 방식을 제공한다.
그렇기에 11장 〈고통의 사회적 결정 요인〉의 제목처럼 사회적 요인에 민감한 정책과 입법의 개발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정신 건강을 이해하는 방식의 근본적인 개혁을 가능하게 할 정치경제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 주장이다. 고통받는 사람을 이해하고 도와주기 위해 우울증이라는 진단명이 꼭 필요하지는 않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단지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진단명이 꼭 필요하다고 느낀다는 사실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고통받는 이에게 너그럽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회적 연대와 정치적 공동체’는 인간이 홀로 다룰 수 없는 고통을 다루기 위해 발명한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이자 진통제이며, 반대로 고통에 관해 이야기하고 연대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관계와 공동체의 성립 조건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것처럼 보이는 사회에서 우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외롭고 우울하다는 뉴스가 끊이지 않는 것은, 함께 고통에 대해 사유하고 변화를 위해 연대하는 것이 의미 있는 관계와 삶을 구축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 왜 우리의 정신 건강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악화하고 있는 것일까?
- 정신적 고통이 치료의 대상이 된 것은 정말 진보적인 변화였을까?
‘우울증’ ‘ADHD’ 같은 정신질환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사회 문제가 되었다. 우울증으로 진료를 받는 사람은 한 해에만 100만 명에 달하며, ‘공부 잘하는 약’으로 통하는 ADHD 치료제는 지난 5년간 처방 건수가 3배 이상 급격히 증가했다. 그러나 각종 약물 처방에도 불구하고 정신질환을 겪는 환자 수는 갈수록 늘어나기만 하고 있다. 왜 우리의 정신 건강은 나아지고 않고 오히려 악화하고 있는 것일까?
영국 의료인류학자 제임스 데이비스는 이 책 『정신병을 팝니다』에서 ‘고통을 이해하는 문화’에 일어난 거대한 변동이 정신 건강 위기의 근본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정신질환이 약물로 치료해야 하는 한 개인의 뇌의 문제로만 비춰질 때, 정신적 고통을 둘러싼 맥락은 눈앞에서 사라지고 만다. 우리 마음을 병들게 하는 실업, 경쟁적 교육, 물질주의 세계관 등이 고통의 사회적 원인임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개인화하고 의료화하고 상품화하는 사회 속에서 정신질환 환자 수는 늘어나지만 고통을 경유한 정치적 연대의 가능성은 오히려 축소되고 마는 것이다.
저자는 임상 상담의 현장을 찾아가고 통계 분석을 제시할 뿐 아니라 정치인, 정신의학자, 인류학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신자유주의 사회와 정신질환의 관계를 하나하나 파헤쳐간다. 이 책은 우리 사회의 실패로 인해 발생하는 고통이 어떻게 정신질환으로 정의되어 왔는지, 그리고 정신질환에 대한 개인주의적 관점이 정부와 거대 기업에 의해 어떻게 장려되어 왔는지, 어째서 이것이 부적절하며 위험한지 보여준다. 나아가 우리가 고통을 생각하는 방식을 변화시켜온 신자유주의 사회와 치료적 세계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이야기한다.
■ 왜 우리의 정신 건강은 갈수록 나빠지기만 하는가?
지난 수십 년간 정신질환의 범위는 공격적으로 확대되어 왔다. 이에 따라 이전에는 질병으로 이해되지 않았던 감정이 질병으로 이해되는 과정인 ‘의료화’ 또한 급속히 진행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정신적 고통 대다수가 부당하게 의료화되고, 병리화되며, 투약의 대상이 되는 결과를 낳았다. 학교에서의 집중력 부족, 일터에서의 실적 부진 등은 최근 정신질환의 증상이라고 의학적으로 재분류된 수많은 고통 중 일부에 불과하다.
저자가 2장 〈빚과 약물을 확산하는 새로운 문화〉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1960~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우울증’은 소수에게만 해당되는 질병이자, 별다른 치료 없이도 자연적으로 해소 호전되는 질병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특히 SSRIs 계열 항우울제가 개발되면서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 같은 질병, 즉 개인의 내부에 위치한 생물학적 질병이자 그렇기에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질병으로 이해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이해 방식의 확산과 함께 치료를 요하는 ‘우울증 환자’의 범위 또한 빠르게 확장되어 왔다.
그러나 이처럼 심리학에 관한 담론이 활발해지고 정신과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 또한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정신질환 환자의 수는 지속해서 증가해왔다. 일차적으로 이는 별다른 과학적 근거가 없음에도 정신질환의 범주를 공격적으로 확대해온 제약업계와 정신의학계의 이익 추구 행위와 관련된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또한 개인을 사회로부터 고립시키는 개인주의적이고 시장화된 해법을 옹호함으로써 개인의 생산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신자유주의 사회’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요 주장이다.
실제로 정신 건강 산업은 정신적 고통을 개인이 처한 고통스러운 사회적 상황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뇌 질환으로 개념화함으로써 고통을 ‘탈정치화’했고, 신뢰할 만한 증거가 없는데도 고통을 뇌의 결함이나 유전자의 결함으로 돌림으로써 고통을 ‘병리화’했으며, 고통을 더 적절한 약을 복용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전환함으로써 고통을 ‘상품화’했다. 문제는 이러한 시각이, 약물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약물 투여를 장려할 뿐만 아니라, 빈곤, 차별, 외로움과 같은 사회적 요인에 대한 관심을 흐리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약물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장기적으로는 이득보다 해악과 부작용이 더 많다는 사실 또한 실증적 연구 결과를 통해 밝혀지고 있는 상황이다(2장 참조).
저자는 이러한 문제들을 자신이 상담사로 일했을 당시의 경험들과 여타 임상 현장의 사례들을 통해 경험적으로 보여주고 과학적 연구와 통계자료를 제시할 뿐만 아니라,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정신적 고통을 철저하게 개인의 뇌 문제로 구성하는 정신의학적 관점의 비과학성과 해악을 폭로한다. 나아가 이러한 치료적 시각이 실제적 효과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 사회적 지지를 받게 된 사회문화적이고 경제적인 이유를 탐색한다.
■ 고통을 탈정치화하고 개인화하는 사회의 출현
신자유주의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개인 또한 하나의 상품이 된다는 것으로, 개인들은 진정한 자아의 실현이라는 명목하에 끊임없이 현대의 경제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과 이미지를 계발할 것을 요구받는다. 저자가 3장 〈현대적 노동이 낳은 새로운 불만〉에서 포착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현상이다. 새로운 자본주의는 저자가 9장 〈생산성을 비인간화하기〉에서 탐구하고 있는 것과 같은 자아실현, 창의성, 개인성 등의 자율성에 대한 요구를 신자유주의적인 ‘자유’를 실천하라는 요구로 번안하여, 노동에 필요한 자질을 스스로 계발하게 한다. 이러한 체제에서 인간의 감정은 또 다른 내밀한 자기감시와 향상의 대상이며, 심리적 고통이란 효율적이고 경제적으로 관리되어야만 하는 무언가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점에서 정신질환이 신자유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상, 즉 지치지 않으며, 항상 활동적이고, 생산적이며, 긍정적인 인간상의 반대항을 포함하게끔 구성되곤 한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사실이다. 저자가 9장 〈생산성을 비인간화하기〉에서 지적하듯, 『정신 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DSM)의 총괄기능척도는 낮은 노동 생산성과 업무 능력을 정신 장애의 주요 특징들 중 하나로 개념화한다. 일에 대한 지속적인 주의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의 부재, 결정의 어려움, 피로함, 정신 운동의 지연을 우울 삽화의 주된 특징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이처럼 현대의 정신의학적, 심리학적 세계관에서는 오로지 개인의 병리만이 존재하며, 병리적인 인간이 된다는 것의 의미는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인간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4장 〈직장 복귀를 위한 새로운 심리치료〉가 보여주듯 가장 ‘가성비’ 좋게 노동자들을 회복시키는, 즉 일터로 돌려보내는 것이 치료의 목적으로 이해되고, 5장 〈실업의 새로운 원인〉이 보여주듯 실업의 원인을 개인의 성격적 결함에서 찾는 정신의학적 개입이 도입되며, 6장 〈교육과 신관리주의의 부상〉이 보여주듯 아이들의 시험 스트레스마저 의료화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 사회에서 ‘공부 잘하는 약’으로 통하는 ADHD 치료제가 지난 5년간 처방 건수가 3배 이상 증가하고, 청소년 정신질환 환자 수가 갈수록 늘어나기만 하는 근본 이유일 것이다.
■ 고통을 치료 대상으로 삼는 신자유주의 사회를 넘어서
우울증 환자의 ‘탈낙인화’를 주장하는 이들은 우울증은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마음의 감기’이며, 그렇기에 누구나 쉽게 ‘우울증’ 진단과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무리 질병에 걸린 것은 당신 잘못이 아니라며 탈낙인화 캠페인을 펼친다 한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질병의 환자로 진단된다는 것의 의미는 결국 ‘회복이 무엇보다 개인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다. 우울증에 대한 낙인이 없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더 많은 사람이 우울증 진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며, 그 결과 더 많은 치료 상품을 소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8장 〈물질주의는 이제 그만〉의 주제가 물질주의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듯 치료적 세계관은 정신적 고통을 감기처럼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질병, 뇌의 세로토닌 문제로 개념화한다. 그러나 우울증이 정상적인 질병이고 누구나 겪는 질병이라면, 현대 사회에 고통이 만연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질문할 필요가 없는 것일까? 고통받는 상태가 정상이라며 얄팍한 위안을 제공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더 적게 고통받는 사회를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정신의학이 내세우는 세계관은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깊이 손상시키며, 가장 탈정치화되고 소외된 우울증에 대한 이해의 방식을 제공한다.
그렇기에 11장 〈고통의 사회적 결정 요인〉의 제목처럼 사회적 요인에 민감한 정책과 입법의 개발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정신 건강을 이해하는 방식의 근본적인 개혁을 가능하게 할 정치경제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 주장이다. 고통받는 사람을 이해하고 도와주기 위해 우울증이라는 진단명이 꼭 필요하지는 않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단지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진단명이 꼭 필요하다고 느낀다는 사실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고통받는 이에게 너그럽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회적 연대와 정치적 공동체’는 인간이 홀로 다룰 수 없는 고통을 다루기 위해 발명한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이자 진통제이며, 반대로 고통에 관해 이야기하고 연대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관계와 공동체의 성립 조건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것처럼 보이는 사회에서 우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외롭고 우울하다는 뉴스가 끊이지 않는 것은, 함께 고통에 대해 사유하고 변화를 위해 연대하는 것이 의미 있는 관계와 삶을 구축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목 차
- 서론
1부 새로운 아편
1장 경제적 서곡
2장 빚과 약물을 확산하는 새로운 문화
3장 현대적 노동이 낳은 새로운 불만
4장 직장 복귀를 위한 새로운 심리치료
5장 실업의 새로운 원인
6장 교육과 신관리주의의 부상
2부 어떻게 우리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나
7장 소위 화학적 치료의 탈규제화
8장 물질주의는 이제 그만
9장 생산성을 비인간화하기
10장 너 자신만을 탓하라
11장 고통의 사회적 결정 요인
결론
주
옮긴이 해설
찾아보기
추 천 사
“제임스 데이비스는 정신 건강에 관해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이 책은 아름답고 깊이 있는 합리적 저작이다. 고통을 겪고 있고, 그 고통을 멈추는 방법을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책을 당장 읽어야 한다.”
“훌륭하고 감동적이며 진정으로 삶을 바꾸는 책이다. 경고: 우리 모두가 인간 고통의 근본 원인에 대해 잘 알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권력자들에게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계몽적인 책이다. 우리가 어떻게 개인적인 문제를 정치적인 맥락과 다시 연결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그렇게 함으로써 더 나은 길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분노와 용기를 동시에 느끼게 한다. 대단히 명료하고 논쟁적이다.”
“지적이며 강력한 주장을 담은 책. 서사를 관통하는 풍부한 공감과 이야기가 무척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