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이에야스] 발매
본문
도쿠가와 이에야스 - 인물과 사건으로 읽는 일본, 칼의 역사
정가 : 14,000원
정보 : 344쪽
인내와 견딤의 달인! 도쿠가와 이에야스.
겨우 숨만 붙어 있는 것 같았던 일개 미카와의 작은 지방에서 태어나 마침내는 일본 전체를 지배하기까지, 역경과 고난으로 가득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삶. 그의 삶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었다. 늘 궁지에 몰린 듯하면서도 역경을 헤치고 나온 그는 어떤 순간에 어떤 선택을 했을까?
제1편 고투기
1. 토쿠가와 씨의 기원
2. 미카와 8대
3. 이에야스 탄생
4. 떠도는 신세
5. 이에야스의 첫 출진
6. 오케하자마 전투
제2편 비약기
1. 오다 씨와의 연합
2. 동방 경략
3. 광란의 소용돌이
4. 엔슈 경략
5. 아네가와 전투
6. 미카타가하라 전투
7. 나가시노 전투 이전
8. 나가시노 전투
9. 그 후의 코산 지방
10. 후타마타 성의 비극
11. 저물녘 텐모쿠잔의 폭풍
12. 이가지의 난(혼노지의 변)
13. 회오리바람과 하시바 히데요시
14. 코마키 · 나가쿠테 전투
15. 토요토미 · 토쿠가와 두 영웅의 암투
16. 토요토미 타이코의 오다와라 공략
17. 칸토 이봉
18. 조선침략 전후
19. 히데요시의 죽음과 이에야스의 비약
제3편 완성기
1. 세키가하라 전투
2. 에도 막부
3. 막부의 정책 (1)
4. 오오사카 성의 비극
5. 막부의 정책 (2)
6. 이에야스의 죽음
7. 맺음말(인물론)
책 속으로
이에야스는 전란의 근원은 무지에서 오는 것, 윤리와 도덕을 알지 못하는 살벌한 기풍에서 오는 것이라 여겨, 학문의 힘으로 그에 대한 올바른 감식안을 기름으로 해서 오로지 평화를 마음에 두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즉, 평화을 위해서 학문을 장려한 것인데 그 목적은 충분히 달성되었다고 할 수 있으리라.
이에야스는 실력 제일주의자였다. 어떤 일에서나 가장 우선시한 것은 실력이었으며, 그런 다음에야 명칭을 붙인 것이 그 예다. 막부의 타이로 · 로주라는 명칭도 훗날에 붙인 것으로 이에야스 시대에는 미카와 때부터 써오던 토시요리(年寄)라는 명칭을 썼다. 세키가하라 전투도 완전히 실력을 갖춘 후에야 싸움을 시작했다. 실력은 급속하게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한 걸음 한 걸음 오랜 시간의 계획적이고 영속적인 노력에 의해서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이에야스의 참된 면모는 한 가지 목표를 정하면, 한 걸음 한 걸음 소의 발걸음으로 그곳에 다가가 마침내는 그것을 관철시키는 면에 있었을 것이다. 오오사카 성의 멸망과 각 다이묘의 통제, 공가제법도 등이 그러한 그의 주의를 잘 보여주는 것인데, 한편으로는 그것을 위해서 잔혹한 모습도 보였기에 세상 사람들로부터는 동정을 잃고 말았다.
이에야스의 일생은 인내와 분투의 연속이었다.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으니 서두를 필요 없다. 불편함을 늘 생각하면 부족함은 없다. 마음에 뜻이 서지 않는다면 곤궁했던 때를 생각하라. 인내는 무사함의 근원, 화는 적이라 생각하라. 이기는 것만 알고 지는 것을 모르는 자는 해가 그 몸에 미치리라. 자신을 탓하고 남을 탓하지 말라. 미치지 못하는 것이 넘치는 것보다 낫다.”
그의 행동에 표리가 있어서 음험하고, 말과 마음이 달랐던 점 때문에 아무래도 그의 남자다움이 사라져버리고 만 듯한 느낌이다. 이는 그가 노부나가의 최후, 히데요시의 최후를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의 사후 그들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생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자손의 번영을 생각하면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기에, 이전까지의 주의와 주장을 깨고 억지스러운 행동을 했던 것이라 여겨지지만, 그것은 누가 뭐래도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이에야스의 일대 결점이었다.
어찌 되었든 300년의 평화는 역시 이에야스의 공으로 돌리지 않을 수 없으리라. 인내와 자중, 겨우 숨만 붙어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었던 일개 미카와에서 몸을 일으켜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룬 이에야스. 오닌의 난 이후 끊임없는 전쟁으로 피어올랐던 흙먼지를 내외의 정책으로 닦아내어 찬란한 에도 문화의 꽃을 피우고, 전국에서 천하태평의 노래를 구가케 한 이에야스의 일생에 걸친 분투는 일본 역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본문 중에서
얄밉구나, 나무에서 떨어진 원숭이 새끼를 먹고 너구리는 배를 두드리네
일본의 전국시대는 그야말로 혼돈의 시대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진 전쟁으로 일본 전역은 혼란스러웠으며 백성들의 삶은 피폐했다. 그러나 중앙정부는 그러한 혼란을 수습할 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 못했으며, 일본 특유의 정치형태였던 무사정권 역시 그 힘을 잃어 일본 국내의 통치는 물론 자신의 안위조차 보살피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처럼 중앙정부 및 무사정권이 힘을 쓰지 못하자 혼란한 각지에서 무력을 바탕으로 한 지방호족들이 자신의 세력을 키워나갔으며, 그들의 힘은 결국 중앙정부나 무사정권을 능가하게 되었다. 오로지 실력만이 유일한 삶의 방식이었기에 하극상까지도 심심찮게 일어났던 전국시대.
그러한 전국시대에 오다 노부나가의 화려한 등장을 알린 오케하자마 전투는 하나의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후, 오다 노부나가는 혼란의 전국을 차례차례 정복하여 일본 통일이라는 대업을 눈앞에 두었으나 안타깝게도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자신의 부하였던 아케치 미쓰히데의 손에 의해 목숨을 잃고 만다. 이때 질풍 같은 속도로 달려와 당시의 중앙을 장악한 것이 역시 오다 노부나가의 부하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였다. 그리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마침내 일본 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룬다.
이러한 전국시대의 커다란 흐름 속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늘 당대 권력자들과 손을 잡아 자신의 실력을 착실히 키워나갔다. 오다 노부나가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맹은 전국시대의 동맹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단 한 번도 깨진 적이 없는 동맹이었다. 물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능력이 뛰어난 것이 가장 커다란 이유 중 하나였을 테지만, 오다 노부나가와의 동맹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자신의 세력을 점차 확장해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오다 노부나가가 세상을 떠나자 이번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손을 잡았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중앙의 혼란을 수습하는 동안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지방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버금가는 세력을 키웠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세력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조차 두려워할 정도가 되었으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결코 자신의 발톱을 드러내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몸에 익힌 인내와 자중으로 때가 오기를 끝까지 기다렸다. 그런 그에게 마침내 찾아온 기회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 그는 그제야 무엇 하나 꺼리지 않고 자신의 본성을 드러낸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죽음 이전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그 후의 그는 인격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모든 것이 바뀌어버린다. 그로 인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약 300년에 걸친 에도 시대의 평화를 기초했으면서도 오랜 시간 사람들의 인기를 얻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에야스는 왜 그처럼 능구렁이와도 같은, 한편으로는 잔혹하게 보이기까지 한 행동을 한 것이었을까? 이에야스의 삶 전체를 둘러보아 그 원인을 생각해보고, 거기서 삶의 지혜라고도 할 수 있는 인생의 교훈을 얻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