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시대를 생각한다] 도쿠가와 3백 년의 유산
본문
에도시대를 생각한다 - 도쿠가와 3백 년의 유산
정가 : 22,000원
정보 : 242쪽
에도 말기와 메이지유신 전환기를 주로 공부하는 박훈 교수는 도쿠가와 시대를 다룬 연구서가 매우 적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주변의 연구자들을 모으고 때를 기다리다가 플라톤 아카데미와 함께 연구서를 출간할 기회를 마련했다. 한일관계가 나빠질수록 서로를 알아야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간 외면되었던 일본 근세와 근대의 주요 연구를 소개하고자 한다. 빈서재 출판사는 이에 호응하여 연구총서를 준비했다.
차 례 . . . . . . . . . . . . . . . . . . . . . . . . . . . 6
들어가는 말 . . . . . . . . . . . . . . . . . . . . . . . 13
제 1 장 ‘일본적’ 문화의 형성 . . . . . . . . . . . . . 19
1.1 이른바 ‘일본적’인 것과 근세 . . . . . . . . 19
1.2 일본 고전 문화의 영상 완성 . . . . . . . . 28
1.3 이국취미 문화의 일본화-선 . . . . . . . . . 40
1.4 선종 문화와 일상생활 . . . . . . . . . . . 48
1.5 일본적 유학의 성립 . . . . . . . . . . . . . 55
1.6 일본의 문화적 자립 . . . . . . . . . . . . . 66
1.7 쇄국에 대하여 . . . . . . . . . . . . . . . . 75
제 2 장 새로운 국가의 성장과 전개 . . . . . . . . . 83
2.1 ‘일본적’ 문화 형성의 배경 . . . . . . . . . 83
2.2 국가의 공백기 . . . . . . . . . . . . . . . . 86
6
2.3 공의公儀의 성립 . . . . . . . . . . . . . . . 94
2.4 가정家政에서 국정으로 . . . . . . . . . . . 104
2.5 다테 사회를 향한 저항의 좌절 . . . . . . . 115
2.6 행정 관료의 역할 . . . . . . . . . . . . . . 124
2.7 근세 사회의 맹점 . . . . . . . . . . . . . . 137
2.8 ‘사私’ 세계의 성장 . . . . . . . . . . . . . . 144
제 3 장 ‘근대화’ 일본의 기반 형성 . . . . . . . . . 151
3.1 우민관의 수정 . . . . . . . . . . . . . . . . 151
3.2 민중의 지식욕 . . . . . . . . . . . . . . . . 160
3.3 문화의 상품화 . . . . . . . . . . . . . . . . 166
3.4 지적 시민 사회 . . . . . . . . . . . . . . . 176
3.5 외래문화의 수용 . . . . . . . . . . . . . . . 196
3.6 새로운 격물궁리 . . . . . . . . . . . . . . . 204
나오는 말 . . . . . . . . . . . . . . . . . . . . . . . . . 219
부록 . . . . . . . . . . . . . . . . . . . . . . . . . . . . 223
장별 주요 참고문헌 . . . . . . . . . . . . . . . . 223
에도시대 막부 관직 구조 . . . . . . . . . . . . . 227
역자 후기 . . . . . . . . . . . . . . . . . . . . . . . . . 231
찾아보기 . . . . . . . . . . . . . . . . . . . . . . . . . 235
P. 40
일본 문화를 구성하는 많은 요소가 외래문화, 특히 중국에서 전래된 것임은 새삼스레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오늘날 ‘일본적’ 문화의 대표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실은 전래된 당초에는 ‘이국적’이었기 때문에 지식인들에게 환영받았다가, 근세에 들어선 후 그것이 ‘일본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고 할 만한 것이 있다. 첫손가락에 꼽을 만한 것이 바로 선(禪)이다.
P. 75
근세의 쇄국에 대해 나름의 견해를 서술하겠다. 결론부터 말하면 에도 막부의 쇄국 정책, 특히 정책 실시에 관한 후세의 논평은 그 의의와 공과라는 점에서 심히 부당한 부담을 지웠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현대 일본인의 국제성 결여조차 근세 쇄국의 후유증인 것처럼 말하기도 하는데 일본인의 섬나라 근성이 단순히 쇄국 때문이라고 할 수 없다.
P. 149
기타무라 도코쿠는 『도쿠가와 시대 평민적 이상』에서 “겐로쿠 문학을 비하하여 일본 문학의 치욕”이라 간주하는 설에 반대하며 “일본에서 처음으로 언급된 평민의 목소리”라 주장하면서 평민적 이상의 발로이자 일본의 생명 표현이라 평가하였다. 그러면서 “도쿠가와 3백 년의 저변에 흐르는 큰 강물이 눈앞을 가로지를 때 나는 이를 즐겨 관찰한다. 누가 알겠는가. 도쿠가와 시대에 땅 밑에서 흐르던 큰 강물은 메이지의 정치적 혁신에 막혀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님을”이라고 논하였다.
현대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일본적"인 것은 대체로 에도시대에 기반을 두고 있다.
외래사상인 유학과 불교가 완전히 정착했고 일본은 국학으로 응답했다.
통일된 국가 권력으로서 에도 막부의 확고한 지배체제는 행정 관료 조직의 정비를 통해 제도화되었다.
가부키, 스모와 같은 문화상품이 크게 성행한 배경에는 경제 성장과 민간의 폭발적인 지식욕구가 있었다.
[출판사 / 총서 소개]
에도 말기와 메이지유신 전환기를 주로 공부하는 박훈 교수는 도쿠가와 시대를 다룬 연구서가 매우 적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주변의 연구자들을 모으고 때를 기다리다가 플라톤 아카데미와 함께 연구서를 출간할 기회를 마련했다. 한일관계가 나빠질수록 서로를 알아야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간 외면되었던 일본 근세와 근대의 주요 연구를 소개하고자 한다. 빈서재 출판사는 이에 호응하여 연구총서를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