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하는 뇌]: 뉴런부터 국가까지, 대화는 어떻게 인간을 연결하고 확장하는가
본문
저자 - 셰인 오마라
역자 - 안진이
출판사 - 어크로스
쪽수 - 324쪽
가격 - 20,000원 (정가)
★★★ “이제 인류는 ‘대화하는 종’으로 정의되어야 한다!”
★★★ 영국 워터스톤스 선정 올해의 과학책(2023)
서로 다른 뇌 시스템 간의 상호작용이자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 대화
흔히 ‘호모 사피엔스’라는 이름의 뜻에 따라 인간은 본질적으로 ‘지혜로운 인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만약 셰인 오마라에게 인간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단박에 인간이란 ‘대화하는 인간’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뇌과학의 관점에서 볼 때 대화는 인간의 삶을 유지하게 만드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오마라는 대화를 이렇게 정의한다. “우리 자신의 기억과 언어를 지원하는 뇌 시스템과 상대방의 기억과 언어를 지원하는 뇌 시스템 간의 지속적인 상호작용(21쪽)”이라고. 대화는 서로 다른 사람들 간의 뇌 시스템을 연결해주는 다리이며, 따라서 대화가 없다면 우리가 가진 기억과 언어는 갈 곳 없이 고립된다.
우리의 뇌는 대화 상황에 상당히 기민하게 반응한다. “일반적으로 한 화자가 말을 멈추고 다음 화자가 말을 시작하기까지의 간격은 0.2초 정도이며(44쪽),” 대화를 나눌 때 우리의 반응 속도는 “총알이 발사될 때의 최소 반응 시간에 가까울 정도다(44쪽).” 여러 사람이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차례를 지켜서 돌아가며 화자가 되어야 하는데 인간은 하루에 몇 시간씩, “1500번이 넘게(42쪽)” 차례를 바꾸어가며 대화한다. 라드바우드 대학교의 사라 뵈겔스 연구팀은 대화 상황에서 뇌파를 측정해 우리는 질문을 들을 때 처음 두세 단어만을 듣고 대답을 준비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질문에 최대한 빠르게 반응할 수 있게끔 뇌가 준비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토록 빠르게, 자주 대화를 나누며 살아가는 이유는 뭘까? 그 이유는 바로 대화가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구성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개인을 하나로 묶어줄 공통 현실 또는 공통 기억이 있어야 하는데, 이 공통 기억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대화의 과정이다. 즉 대화가 없었다면 우리는 서로를 묶어 줄 공통 기억을 갖지 못했을 것이고 따라서 사회도 구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왜 영국 사람들은 100년 전 동상을 끌어 내렸을까?
: 대화가 만들어낸 기억, 기억이 형성하는 정체성
2020년 영국 브리스틀에서 군중들이 노예 상인이었던 에드워드 콜스턴의 동상을 철거해서 바다에 던져버렸다. 동상을 세우고 난 후 100년 만에 영국 브리스틀 시민들이 이제는 노예 상인의 존재를 기념하거나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도록 결정한 것이다.
한 공동체 안에서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첨예한 대립을 불러오는 상당히 중요한 질문이다. 이 기억의 과정이 치열한 싸움이 되는 이유는 기억이 사회 안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가장 중요한 연결 고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엇을 기억할 것이냐의 문제는 곧 한 공동체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어떤 문화를 만들어나갈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영국 브리스틀 군중들의 결정은 영국 사회가 더는 노예 상인을 공동체를 형성할 연결 고리로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하는 것으로, “동상을 부수는 행위가 역사적 기록의 일부가 된다(220쪽)”라는 주장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 집단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기억은 과거, 현재, 미래를 해석하게 하는 틀로써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 사회가 무엇을 기억할 것이냐가 집단적 정체성을 구성하는 역할을 한다면, 내가 무엇을 기억할 것이냐는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기억을 자서전적 기억이라고 부르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기억은 개인의 인생 이야기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흔히 기억을 과거에 관련된 것으로만 생각하지만, 기억이 없다면 지금 내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으며 마찬가지로 미래에 대한 전망도 잃게 된다. 예컨대, 뇌과학 영역의 기억 관련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사례로 꼽히는 헨리 몰레이슨의 경우를 살펴보자. 기억상실증에 걸린 몰레이슨은 “최근에 얻은 정보를 활용해서 현재를 해석할 수 없었으며(22쪽)”,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이 부족했다(22쪽).” 기억이 현재와 미래를 가늠하는 기능까지 담당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억은 내가 누구였으며, 지금 누구인지, 그리고 앞으로는 누구일지까지 결정한다.
우리가 ‘같은 현실을 공유하는 우리’가 되려면?
: 잡담의 숨겨진 힘을 찾아내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해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현실과 내가 생각하는 현실이 일치해야 한다. 예를 들어, 기차표를 사러 매표원과 대화를 나눈다고 하자. 매표원은 기차표에 관련된 지식을 기억하고 있어야 하며, 자신이 기차표를 팔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고 매표원이 기차표 가격을 잊어버린다거나 기차표가 아닌 초콜릿바를 팔려고 한다면 표를 사고파는 간단한 행위마저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우리는 대화를 통해 기억을 조율하고 회상을 일치시키며 사건에 대한 공통의 이해를 만들어(168쪽)” 냄으로써 공통 현실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놀라운 점은 공통 현실을 바탕으로 삼아 집단 지식을 공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잡담(gossip)이라는 점이다. 긍정적인 잡담은 새로운 구성원이 집단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동시에 부정적인 잡담은 집단 안에서 우리의 행동을 규율해준다. 특히나 규모가 큰 집단이나 복잡한 사회일수록 잡담의 역할이 커진다. 작은 집단에서는 서로가 서로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한편, 집단의 구성이 복잡할수록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통로와 수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잡담은 간접적인 방식으로 집단 정체성을 유지한다.
물론 집단 정체성이 항상 긍정적인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집단 지식, 집단 내에서 공유되는 정보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그 결과는 천차만별일 수 있다. 사람들은 공유된 지식을 ‘공유되었기 때문에’ 그대로 진실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만약 그 정보가 가짜 뉴스였다면? 혹은 리더십이 부족한 지도자에 의해 퍼뜨려진 편파적인 정보였다면? 사람들과 연결되기 위해 집단의 믿음을 따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 일이 곧 부정적인 결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유념해야 한다.
대화를 통해 만들어낸 ‘상상의 공동체’, 국가
: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미국 국경을 넘는 법
대화를 통해 형성되는 집단 정체성은 하나의 가정, 하나의 기업이나 지역 정체성에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국가 또한 대화를 통해 구성된 정체성이라고 본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아일랜드 더블린 공항에 있는 미국 CBP(관세국경보호청)다. 더블린 공항에서 CBP 직원들의 출입국 심사를 통과한다는 것은 미국에서 새롭게 국경을 넘을 필요 없이, 미리 국경을 넘었다는 말이 된다. 즉, 아일랜드 더블린이라는 미국 외의 구역에서 CBP 직원들은 일종의 허구적 국경을 유지하며 감시하는 것이다.
이 점을 이해한다면 자연스럽게 국가주의가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까지 나아갈 수 있다. 국가주의는 특정한 시공간에 있는 사람들끼리 공유하는 “이게 우리나라다. 우리는 나라에 충성하고 헌신하며 자결권을 가진다(260쪽)”라는 의식이다. 즉 국가주의는 대화의 뇌과학적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 강력한 심리적 힘이다. 이 힘은 지나치게 강력해서 아돌프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를 낳기도 했지만, 때로 마하트마 간디나 넬슨 만델라의 예시처럼 국가주의가 봉사와 헌신을 통해 얻은 권력을 지지하도록 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정치학자 베네딕트 앤더슨이 1983년 《상상된 공동체》라는 책을 통해 국가가 상상의 공동체라는 인문학적 설명을 해냈다면, 《대화하는 뇌》에서 저자 셰인 오마라는 심리학적이고 뇌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국가가 상상의 공동체이며, 그 상상의 도구가 바로 대화임을 밝혀낸다.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국가라는 거대한 사회에서 대화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탐구해나가는 이 여정을 통해, 이 책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행위가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목 차
- 서장 | 인간은 언제나 이야기꾼이었다 11
1장. 대화를 나눌 때 뇌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37
차례 지켜 말하기 | 질문이 대답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 | 상대방에게 귀 기울이게 하는 대화 수용성 | 상호작용을 촉진시키는 라포의 힘 |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 | 공통의 문화적 현실을 구성하는 기억
2장.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도 말을 건다 75
인간의 정신적 삶에 관한 연구 | 현재와 미래를 위한 기억 | 자서전적 서사가 만들어지는 과정 | 해마가 마음의 방황에 미치는 영향
3장. 집단적 소통은 어떻게 가능한가 101
수많은 사람이 하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까닭은? | 집단적 지식의 두 얼굴 | 집단 정체성의 명과 암 | 집단적 순응의 종류 | 공통의 현실을 만들어내는 잡담의 힘
4장. 사피엔스가 기억을 공유하는 방법 127
기억이라는 사회적 현상 | 집단 기억이 개인의 기억을 압도할까? | 공통 지식으로서의 집단 기억 | 뇌가 스토리텔링을 좋아하는 이유
5장. 과거와 미래로의 시간여행 151
과거에 대한 기억과 그 한계 | 미래로의 정신적 시간여행 | 기억과 언어의 협력 | 기억 시스템이 발달하는 과정
6장. 대화가 우리의 현실을 지탱한다 169
자기 자신에 대해 각각 다르게 말하는 이유 | 기억 인출을 돕는 협력적 촉진과 협력적 억제 | 집단 기억에 대한 순응 | 지극히 사회적인 인간 | 공통의 현실 감각이 중요한 이유 | 화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다
7장. 기억은 어떻게 우리를 과거와 연결시키는가 203
기억이 없으면 문화도 없다 | 문화를 지탱하는 믿음 | 가용성 추단이 가져오는 편향 | 우리는 어떻게 과거와 만나는가
8장. 국가는 대화의 발명품이다 229
국경이라는 발명품 | 초국가적 조직과 고립 영토 | 대화를 통해 국가가 만들어지는 과정 | 국가가 출현하기 위한 몇 가지 조건
9장. 미래의 국가를 상상하다 255
기억을 통한 국가 형성과 국가주의 | 공동으로 창조된 현실 | 국가의 과거와 미래를 상상하는 개인들 | 역사는 선택적으로 기술된다 | 대화를 통해 만들어낸 세계
맺음말 289
감사의 글 293
주 295
찾아보기 321
추 천 사
이 책에서 다루는 역사와 사회학은 독자에게 낯설지 않은 것인데도 오마라는 이 모든 것을 신경과학과 연결시키며 일화와 연구 결과를 엮어 냈다. (...) 흥미로운 접근 방식이다.
과학적인 발견에서 개인, 조직, 사회에 대한 설명과 의미에 이르기까지 줄타기를 하는 것은 소수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위업이다. 오마라는 안전망 없이 이를 해냈다.
우리의 마음은 섬이 아니다. 우리의 기억은 주변 사람들에 따라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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