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체지향 교전]: 사변적 실재론과 객체지향 존재론의 형성 과정
본문
저자 - 그레이엄 하먼
역자 - 안호성
출판사 - 갈무리
쪽수 - 464쪽
가격 - 28,000원 (정가)
『객체지향 교전』(영어판 2020년 출간, 한국어판 2025년 출간)은 사변적 실재론을 둘러싼 10여 년의 논쟁을 총정리하고, 비판 속에서 더욱 단단해진 하먼 사유의 궤적을 보여준다. 하먼은 이 책의 한국어판을 위한 서문에서 “지금까지 쓴 24권의 책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책”이라 말한다. 『객체지향 교전』은 공격과 방어, 비판과 응답이 교차하는 철학적 전투의 기록이자, 사변적 실재론 이후의 사유가 어디로 향할 것인가를 묻는 책이다.
톰 스패로와 스티븐 샤비로는 하먼의 철학에 균형 잡힌 비판을 제시한 동료이자 대화 상대이며, 피터 그래튼과 피터 울펜데일은 더 강한 비판적 입장을 취하는 논객들이다. 그러나 하먼의 철학적 관계망은 단순히 ‘적과 친구’의 구도로 환원되지 않는다. 초기 사변적 실재론의 동료였던 레이 브라시에는 냉철한 비판자로 돌아섰고, 반대로 자크 랑시에르 같은 사상가는 의외의 지점에서 공명한다. 레비 브라이언트처럼 중립적 입장을 지키던 철학자가 논쟁의 한복판으로 들어오기도 하고, 크리스토퍼 노리스나 단 자하비처럼 예상 밖의 강한 반대자들도 등장한다.
『객체지향 교전』은 이처럼 복잡하게 얽힌 철학적 대립의 장을 일종의 사유 지도처럼 펼쳐 보인다. 하먼은 서로 다른 입장들이 부딪히는 현장에서 사유가 더 정밀하게 다듬어지고, 철학의 핵심 문제가 새롭게 드러난다고 믿는다. 이 책은 바로 그 철학적 긴장과 응답의 기록이다.
톰 스패로 - 현상학과 객체지향 존재론의 대화
현상학을 자신의 철학적 출발점으로 삼은 톰 스패로는 『현상학의 종말』이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저서에서 현상학이 직면한 한계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는 현상학이 “사물 그 자체로” 나아가겠다는 선언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반실재론의 틀 안에 머무르고 있다고 본다. 스패로에게 현상학은 실재를 향한 통로라기보다, 실재에 대한 접근을 끊임없이 지연시키는 제도적 체계에 가깝다. 하먼은 스패로의 이러한 분석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실재론과 관념론의 구도를 단순히 대립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의 정신과 독립된 사물의 현존”만으로는 실재론을 정의하기에 부족하다고 말한다. 스패로가 “사변적 실재론은 현상학에서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방식으로 실재의 현수막을 달았다”(13쪽)고 말하듯, 하먼에게서 사변적 실재론은 현상학 이후의 새로운 실재 사유를 모색하는 시도다.
그렇다면 논쟁은 어느 지점에서 벌어질까? 우선 스패로는 현상학이 지키지 못할 사명을 내려놓고 헤겔주의 관념론과 새로운 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제안하지만, 하먼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먼에게 현상학은 관념론일지라도 ‘객체지향 관념론’이기 때문이다. 하먼은 빵, 라이터, 집, 영수증 등 일상의 구체적 사물들이 현상학의 서술 속에 자리한다는 점에서, 객체지향 존재론이 현상학으로부터 중요한 자극을 받았음을 인정한다. 후설은 얼마간 존속하는 지향적 객체를 경험 외부가 아닌 경험 내부에서 발견했다. 이 객체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변화와 안정성을 동시에 지니며, 지향성은 “경험된 내용”이 아니라 “객체-부여 행위”의 문제임이 드러난다. 하먼의 객체지향 존재론은 현상학의 성과를 계승하면서도, 그것을 인간 경험의 범위를 넘어 확장한다.
1장의 후반부에서 하먼은 스패로가 언급한 리 브레이버의 ‘파계적 실재론’을 비판한다. 스패로는 이 이론이 실재론과 반실재론의 중도를 찾는 시도라고 보지만, 하먼은 그러한 중도는 존재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하먼이 보기에 브레이버가 끌어들이는 철학자들, 특히 레비나스의 ‘절대적 타자성’은 결국 칸트적 숭고 개념의 문제를 되풀이할 뿐이다. 만약 영수증과 철학자가 모두 ‘무한한 타자’라면, 그 무한은 결국 차이를 소거해 버린다. 또 하먼은 브레이버의 논의가 인간 중심의 트라우마 개념에 머무르며, 객체 간 관계라는 실재의 핵심을 간과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를 “존재-분류학”(Onto-Taxonomy)이라 부르며, 진정한 의미의 실재론은 인간의 경험이 아니라 객체들 간의 관계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스티븐 샤비로 - 생성의 철학인가 객체의 독립성인가
스티븐 샤비로는 화이트헤드와 들뢰즈의 철학을 토대로 과정철학의 입장에서 『사물들의 우주』를 집필했다. 그의 사유는 여러 측면에서 하먼의 객체지향 존재론과 맞닿아 있지만, 결정적인 차이 또한 분명하다. 세계의 숨겨진 깊이를 매혹의 개념으로 설명하는 하먼과 달리, 샤비로는 화이트헤드적 관점에서 사물의 변화를 ‘변태’의 개념으로 이해한다. 변태는 사물의 변화무쌍한 패턴 놀이에 집중한다. 그는 변화를 존재의 본질로 보며, 사물들이 끊임없이 관계 속에서 재구성되는 과정을 강조한다.
하먼은 매혹과 변태에 관한 샤비로의 미학적 논의에 결함이 있다고 지적한다. 하먼에게 매혹은 칸트의 숭고가 아니라 ‘아름다움’의 영역에 속한다. 하먼에 따르면 관찰자는 자기 힘의 한계에 도달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크거나 강력한 것을 찾을 필요는 없으며, “초객체”(티머시 모턴)는 절대적으로 큰 것이 아니라 아주 큰 것, 무한성이 아니라 아주 큰 유한성에 관한 것이다. 또 샤비로는 생성과 과정을 강조하며 정적인 존재론을 비판하지만, 하먼은 이러한 입장이 객체를 위로 환원하거나 아래로 환원하는 위험을 짊어지게 된다고 본다. 하먼에 따르면 한 세기 이상 동안 우리는 관계가 실재를 더 충실히 반영한다는 반복되는 주장을 들어왔다. 그러나 하먼은 이 주장이 실체적 존재의 독립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고 본다.
하먼은 샤비로가 영원한 객체를 무시하는 대가로 직접적 인과관계를 말하게 되며, 『객체들의 민주주의』의 저자 레비 브라이언트가 이 점에서 샤비로와 중첩된다고 본다. 샤비로와 브라이언트는 지각의 하층에서는 직접적 인과관계를, 상층에서는 고립된 실재를 말하지만, 하먼은 이를 “불성실한 해결책”이라 지적한다. 만약 처음부터 지각의 하층부에서는 실재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왜 사물은 지각의 상층부에서 고립된 세계를 스스로 구성하는 불필요한 노동을 해야 하는가? “브라이언트와 샤비로 모두 놓치고 있는 것은 간접적 관계가 결과일 뿐만 아니라 출발점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사과와 코끼리가 어느 지점에서 접촉하고 나서야 그것들 내부에 갇힌다고 말할 수 없다.”(94쪽)
피터 그래튼 - 객체지향 존재론은 플라톤적 형상론인가
『사변적 실재론』의 저자 피터 그래튼은 자크 데리다의 해체주의적 유산을 바탕으로 하먼의 객체지향 존재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철학자이다. 하먼은 그래튼에 관한 3장을 시작하며 “언제나 내가 잘되기를 바라지는 않는 비평가들이 점령한 영역으로 들어간다”(117쪽)고 말하면서, 그래튼과의 논쟁이 철학적 대립 이상의 것임을 인정한다.
그래튼은 하먼의 사유 속에서 플라톤적 영원성의 잔재를 발견하고 객체지향 존재론이 정적인 형상론으로 회귀한다고 본다. 그러나 하먼은 이에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객체지향 존재론에는 플라톤적 형상과 같은 절대적 원형이 존재하지 않으며, “두 개의 세계가 아니라 수조 개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단언한다. 하먼은 “두 자동차의 충돌은 그것들의 외견뿐 아니라 실재적 자동차를 파괴할 수 있다. 반면, 플라톤이 자동차의 형상을 허용했다면 그것을 결코 파괴될 수 없는 것으로 취급해야 했을 것이다”(149쪽)라고 말하며, 플라톤의 형이상학이 현실의 물질적 작용을 설명하지 못함을 지적한다. 그래튼의 비판이 하먼을 플라톤주의의 진영으로 밀어 넣으려는 시도라면 하먼은 객체지향 존재론이 실체의 독립성을 통해 오히려 플라톤적 영원성과 결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튼은 하먼의 사유를 레비나스의 타자성 개념을 통해 해석할 것을 제안한다. 하먼은 이것이 통찰력 있는 주장임을 인정하면서도, 그래튼이 데리다주의적 비판을 위해 타자성을 강조하면서 길을 잃는다고 말한다. 그래튼이 하먼을 ‘타자성’ 개념과 연결하는 요점은 “데리다가 레비나스로부터 드러내는 것과 같은 불가능한 순수 타성에 객체지향 존재론이 전념한다는 것을 함의한다”(172쪽). 그러나 상황은 그와 정반대임을 하먼은 드러낸다. 데리다는 “무한한 타자는 그것이 긍정적 무한이라면, 그리고 그 자체의 내부에 무한정성, 즉 아페이론의 부정성을 유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것 그 자체, 즉 타자일 수 없다”라고 말한다(177쪽). 하먼은 이것이 레비나스의 무한한 타자성에 대한 OOO의 비판을 데리다가 선취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OOO가 레비나스 속에서 발견하는 진가는 무한한 타자성에 있지 않다.
하먼은 개체들의 진실성 속에서 레비나스 철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하이데거는 (존재자와 그 존재 작용의) 결투를 존재와 존재자 사이에 위치시키지만 … 레비나스는 존재자야말로 사이라고 말한다”(184쪽). 레비나스는 모든 현전으로부터의 물러남과 현전의 결투를 하이데거의 일원론적 존재에서 다자, 즉 개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전환하며 객체지향 존재론의 개체적 실체를 위한 회전력을 제공한다.
피터 울펜데일 - 과학주의와 합리주의의 전제에 기댄 비판
『객체지향 철학』의 저자 피터 울펜데일은 하먼의 객체지향 존재론에 대해 가장 강도 높은 비판을 가한 인물이다. 그는 “거의 모든 단락에서 오류를 찾거나 새로운 실수로 추정되는 것을 지적하는 비판 융단폭격”(230쪽)을 퍼부으면서 하먼의 철학을 전면적으로 문제 삼는다. 그러나 하먼이 보기에 울펜데일의 비판은 화려하지만 실질적인 타격에는 이르지 못한다. 그의 논리는 과학주의와 합리주의의 전제에 기대어 있으며 하먼이 구축한 존재론적 토대에는 닿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먼은 객체지향 철학의 출발점이 된 하이데거의 도구-분석을 재해석하면서 자신의 해석이 하이데거의 ‘의도’를 충실히 따르려는 시도가 아님을 명확히 했다고 밝힌다. 그는 “우리는 어떤 철학이 그 철학자가 자신의 철학에 수반된다고 생각한 것과 동일하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76쪽)라고 말했다. 반면 울펜데일은 여전히 “그것은 저자의 의도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읽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하먼이 제시한 해석의 개방성을 수용하지 못한다.
하먼에 따르면 울펜데일의 비판은 인식론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철학의 전통적 전제를 따른다. 그러나 하먼은 이 전제 자체를 거부하며, 오히려 그것이 철학적 사유를 제한한다고 지적한다. 하먼은 인과성의 문제를 통해 이를 구체화한다. 초기 이슬람 신학자들로부터 데카르트, 말브랑슈,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그리고 화이트헤드에 이르기까지의 기회원인론(occasionalism)은 사물 간의 인과를 매개하는 존재로 ‘신’을 상정했다. 흄과 칸트 역시 습관이나 선험적 범주를 통해 인간 정신이 인과를 매개한다고 여김으로써, 사실상 신의 자리를 ‘정신’으로 대체했을 뿐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에서 출발하여 그늘진 저 너머를 사변하지 않기로 한 결단 자체가 존재론적 학설이다”(339쪽). 인식론자는 통상적으로 세계 속 여러 관계에 관해 말하기 전에 세계 속 인과관계들에 대한 증거를 제공할 수 있는 인간 정신의 능력을 먼저 의심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이 의심 자체가 우리의 경험과 그 외부에 있는 세계 사이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추론을 요구한다.”(340쪽)
울펜데일은 합리주의자의 입장에서 사물의 초과성은 양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본다. 우리가 아직 모를 뿐, 원리적으로 사물에 대한 모든 사실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먼은 이에 근본적으로 반대하며 장미와 장미에 관한 지식은 동일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먼은 존재와 인식 사이의 근본적인 비대칭성을 강조한다. 하먼은 “소크라테스의 무지 선언은 ‘나는 3천 가지만 알고 나머지 5천4백만 가지는 모른다’는 의미가 아니다”(306쪽)라고 말한다. 객체지향 존재론이 권하는 대안은 장미의 형상과 장미에 관한 지식의 형상은 매우 다른 두 사물이라는 것이다. “객체는 한 번에 하나씩 벗겨서 직접적으로 알 수 있는 수천 가지 형상의 다발이 아니라, 다른 형상이 되지 않고는 그 객체로부터 추상될 수 없는 형상들의 체계이다.”(311쪽)
알베르토 토스카노 - 신단자론 혐의에 대한 반박
『객체지향 교전』의 2부에서는 하먼이 보다 짧고 응축된 형태로 네 명의 비평가들과 논쟁한다.
알베르토 토스카노는 하먼과 브뤼노 라투르의 사유를 “신단자론적”이라고 규정하며, 두 철학이 라이프니츠의 단자론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것이라 주장한다. 하먼은 이에 대해 자신과 라투르, 그리고 라이프니츠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토스카노가 단자론적 사유가 오늘날 다시 유효성을 갖게 된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비판하며, 그가 인간 사고를 다른 모든 존재로부터 분리시키는 전형적인 ‘존재-분류학자’임을 드러낸다. 하먼에게서 존재는 인간과 비인간, 사유와 비사유의 구분 이전에 이미 작동하는 관계의 장이다.
크리스토퍼 노리스 - 상관주의의 또 다른 변주
데리다주의적 해체주의와 과학적 실재론의 결합을 시도한 크리스토퍼 노리스는, 피터 그래튼과 마찬가지로 퀑탱 메이야수의 철학을 오독한다고 하먼은 지적한다. 노리스는 객체지향 존재론이 반(反)과학적이라고 주장하지만, 하먼은 이러한 비판이 메이야수의 핵심 논지를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임을 보여준다. 그는 객체지향 존재론이 과학적 실재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인간 인식의 한계를 넘어 존재론적 차원에서 새롭게 사유하려는 시도임을 강조한다. 하먼에게서 노리스 또한 “존재-분류학자의 또 다른 사례”로 나타난다. 그는 여전히 존재를 인간 중심의 인식론적 구도 속에서 구획하기 때문이다.
단 자하비 - 현상학적 상관주의에 대해 응답하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철학자 단 자하비는 오늘날 현상학을 대표하는 사상가로, 톰 스패로의 저서에 대한 비판적 서평을 통해 사변적 실재론 전반을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하먼은 자하비의 이러한 비판이 “실재적인 것을 논하려는 어떤 시도도 그 자체로 사고이며, 즉시 현상적인 것으로 붕괴된다는 상관주의적 가정”(403쪽)을 반복한다고 본다. 그는 자하비가 현상학적 범주를 넘어선 사유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객체지향 존재론이야말로 그 한계를 넘어 실재에 접근하려는 철학적 시도임을 강조한다.
스티븐 멀홀 - 환원 불가능성의 의미
옥스퍼드 대학의 철학자 스티븐 멀홀은 객체지향 존재론이 내세우는 “환원 불가능성”의 개념에 주목하며, 그것이 실제로는 다시 환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이에 대해 하먼은 이러한 비판이 객체지향 존재론의 핵심을 오해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 ‘샛별’과 ‘개밥바라기’가 동일한 금성으로 환원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객체지향 존재론의 독창성은 환원 가능성과 불가능성의 문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환원 불가능하다고 간주되는 것의 본성에 관한 이론에 있다”(421쪽)고 설명한다. 즉, 하먼에게 환원 불가능성은 단순히 인식의 한계가 아니라, 객체가 스스로의 존재 방식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원리다.
목 차
- 한국어판 지은이 서문 5
서론 8
1부
1장 톰 스패로 『현상학의 종말』 12
2장 스티븐 샤비로 『사물들의 우주』 56
3장 피터 그래튼 『사변적 실재론』 116
4장 피터 울펜데일 『객체지향 철학』 238
2부
5장 알베르토 토스카노 368
6장 크리스토퍼 노리스 378
7장 단 자하비 393
8장 스티븐 멀홀 410
옮긴이 후기 433
참고문헌 442
인명 찾아보기 458
용어 찾아보기 461
![[객체지향 교전]: 사변적 실재론과 객체지향 존재론의 형성 과정_1.jpg](/data/upload/info/2025_11_19a3d30064838908.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