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사회의 정치사상]: 루소와 스미스로 읽는 18세기 지성사
본문
저자 - 이슈트반 혼트
역자 - 김민철
출판사 - 오월의봄
쪽수 - 324쪽
가격 - 23,000원 (정가)
‘루소’와 ‘스미스’를 제대로 알고자 한다면
누구도 이 책을 우회할 수 없다
상업사회가 출현하고 이기심과 불평등이 부상하던 ’부패‘의 18세기,
루소와 스미스가 파고든 진정한 관점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어디에서 만나고 어디에서 헤어졌을까?
현대 지성사 연구를 대표하는 역사가 중 한 명인 이슈트반 혼트(1947~2013)의 책이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다. 2020년 《지성사란 무엇인가?》(리처드 왓모어, 이우창 옮김)가 독자들의 큰 호응 속에 출간된 이후 지성사 연구와 케임브리지학파를 향한 한국 인문사회학계의 관심 역시 놀라울 정도로 커졌다. 혼트의 오랜 탐구와 사유가 무르익어 있는 《상업사회의 정치사상》은 그 열기를 이어받는 저작으로, 케임브리지 지성사 학파가 내놓은 가장 높은 수준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혼트는 18세기를 주축으로 한 상업사회의 지성사를 보여준다.
2009년 혼트는 옥스퍼드대학 칼라일 강연에서 18세기에 대두한 ‘상업사회’를 다룬 바 있다. 그 강연록을 바탕으로 준비되고 있던 출간은 혼트의 타계로 위기를 맞는 듯했지만, 그의 지도학생(벨라 카포시, 마이클 소넨셔)의 편집을 거쳐 2015년 바로 이 책 《상업사회의 정치사상》으로 출간되었다. 정치사상사와 지성사 분야를 이끄는 세계적 석학 김민철(성균관대 사학과)의 번역과 더불어, 혼트의 생애부터 그의 학적 경로와 맥락, 이 책에 대한 개괄 및 해설까지 제시하는 정교하고 풍성한 해제 〈이슈트반 혼트와 상업사회의 지성사〉(김민철, 이우창)는 한국어판의 독자적 가치를 제대로 증명한다.
이 책에서 혼트는 18세에 부상한 ‘상업사회commercial society’를 18세기 당대인들이 이론적·실천적 차원에서 어떻게 사유했는지 그 논쟁의 다양한 맥락을 풍부하게 제시한다. 물론 여기에는 상업사회에서 작동하는 정치의 유형은 어떤 것인지, 그 사회에 걸맞은 정치학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한 탐구 역시 포함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이 작업은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애덤 스미스와 장-자크 루소라는 두 사상가를 비교 분석하며 공통의 지적 기반과 차이점을 살펴보는 구성 속에서 이뤄진다. 이를 기반으로 혼트는 기존의 만연한 선입견, 즉 스미스는 상업사회의 이론가였지만 루소는 상업사회에 반대하는 공화주의자였다는 선입견을 낱낱이 해체한다. 면밀한 지성사적 독해를 통해 루소 역시 상업사회의 이론가였음을 밝혀내는 것, 그러면서도 루소와 스미스가 상업사회 개념 및 그 핵심 쟁점에 접근하는 방식에서 어떤 차이를 보였는지 드러내는 것, 그것이 혼트가 이 책에서 행하는 작업이다.
상업사회의 핵심 쟁점들을 검토하는 작업은 오늘날의 우리 사회가 맞닥뜨린 문제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상업사회란 18세기 유럽인들이 자신들의 사회를 인식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으로, 20세기 후반 서구 역사학계는 서구 근대를 ‘부르주아 자본주의’로 명명하던 19세기적 관점을 비판하고 이 18세기적 상업사회 개념을 다시 복원함으로써 중대한 성취를 이뤘다. 이번에 소개되는 혼트의 이 작업 역시 상업사회의 핵심적인 쟁점들을 다시 파고들며, 이 책에서 혼트는 ‘상업적 사회성’, ‘통치의 역사들’, ‘정치경제’라는 주의깊게 선별된 주제 속에서 각각 상업사회의 인간학 및 도덕철학, 정부와 통치, 정치와 경제를 둘러싼 논쟁을 검토한다.
서구 지성사학계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이들(퀜틴 스키너, 존 포콕, 개러스 스테드먼 존스, 이슈트반 혼트, 존 던 등) 중 국내에 아직 번역되지 않은 저자는 혼트뿐이다. 혼트의 유작으로 남은 이 책은 그의 글 중 가장 손쉽게 읽히면서도 루소와 스미스에 대한 기존의 분석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참신성을 보여준다. 단단한 학문적 기반 위에서 두 사상가에 대한 기존의 견해를 모두 재고하게 만드는 독창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루소와 스미스에 대한 차후의 연구는 이 책을 결코 우회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상업적 사회성’이란 무엇인가?: 루소 그리고 스미스
이 책의 대주제는 상업사회, 그리고 상업사회의 정치사상을 이해하는 방법이다. 장-자크 루소와 애덤 스미스를 나란히 놓거 독해하거나 하나의 쌍으로 연결하는 식의 비교 연구는 그 주제에 다가가기 위한 방편이다. 혼트는 루소를 공화주의자 및 상업사회의 비판자로, 스미스를 상업사회의 옹호자로 간주하는 통념을 반박하며 두 인물 모두 상업사회의 이론가였다는 도발적이고 급진적인 주장을 펼친다. ‘상업사회’는 스미스가 직접 사용한 용어로, 통상적으로 많은 상업 활동이 이뤄지는 사회, 즉 상인들 혹은 시장경제 주체들의 사회를 가리킨다. 그러나 상업사회가 이러한 의미에 국한되는 것은 아닌데, 스미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상업사회를 “도덕적·정치적 탐색을 요구하는 이론적 대상이자 근본적인 사회 유형으로 정립했다”. 다시 말해 스미스는 상업사회라는 개념을 통해 단지 상거래 활동이 양적으로 증가한 사회가 아니라, “사회구성원들이 상업적 개인으로서 행동하는 사회, 즉 상인이 시장에 참여할 때와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는 사회”를 논하고자 했다. 스미스에 따르면, 상업사회에서는 구성원들의 사회적 관계가 시장을 닮아간다.
혼트가 보기에 이러한 상업사회 개념은 스미스와 루소를 한 쌍으로 엮을 수 있도록 해주는 중심축이다. 그는 비교 연구를 통해 두 사상가의 접점을 살펴보기 전에 우선 해당 개념의 계보부터 짚는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홉스의 도덕철학, 좀 더 구체적으로는 인간에게 자연적 사회성natural sociability 내지는 선천적 사회성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다. 홉스는 인간이 자연적 사회성을 갖추고 있지 않기에 오직 강력한 국가(주권자)를 통해서만 평화로운 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었다. 그러나 근대 초의 사상가들은 자연적 사회성이나 국가권력의 강요가 없는 경우에도 사회가 존재할 수 있는 경로를 떠올렸다. 이 제3의 경로가 ‘물질적 효용’ 혹은 ‘심리적 효용’(인정 욕망)에 기초한 사회성이었으며, 스미스의 상업사회 개념이 바로 여기에 해당했다. 스미스는 “홉스주의적 계보에 직결되는 맥락에서 상업사회의 개념을” 끄집어냈던 것이다. 정리하자면 상업사회란 “물질적인 효용, 그리고 (심리적인 효용에 해당하는) 인정 욕망이라는 두 가지 동력에 기대 스스로를 유지하는” 사회다.
혼트는 18세기 당대의 상업적 현실과 정치에 가장 비타협적이었다고 여겨지는 루소 역시 “물질적 효용과 심리적 효용이라는 이차적 사회성에서 사회의 근원을 찾는 도덕철학”을 공유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도발적인 주장을 심화해나간다. “‘정치경제학자 스미스’와 ‘정치경제의 핵심적 비판자 루소’는 도덕적 토대를 공유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 자체로 면밀하게 살펴볼 가치가 있는 사실이다.”
루소와 스미스의 도덕철학적 유사성은 그들이 집필한 책, 즉 《도덕감정론》(1759)와 《인간불평등기원론》(1755)에서도 드러난다. 혼트는 《도덕감정론》에 대한 면밀한 독해를 바탕으로 스미스가 자신만의 공감 개념(이입, 즉 역할 교대를 바탕으로 하는 공감 및 사회성)을 제시함으로써 “이기심 체계의 기본적인 통찰력을 버리지 않고도 그 체계에서 도덕 담론을 구출”해냈다고 평가하며, 이것이 루소에게도 마찬가지로 해당하는 면모임을 지적한다. 혼트가 보기에 《도덕감정론》은 흄의 틀을 빌려와 “공감의 자연사 혹은 이론적 역사를 기술한 책”이었는데, 이 대목에서 우리는 혼트가 흄, 스미스, 루소와 같은 저자들이 특정한 심리적 기제를 이론적으로 탐구하는 것은 물론 그 작업을 통해 “인간 정신, 나아가 사회가 발달하는 역사적 과정의 모델을 구축”했음을 예리하게 간파한 혼트의 통찰을 엿볼 수 있다.
정부 및 통치의 역사: 법과 법관의 문제, 그리고 불평등
앞서 살펴보았듯, 루소와 스미스는 공히 인간의 선천적 사회성과 도덕성을 부정했다. 혼트는 두 사상가가 개진한 도덕철학적 논의의 바탕 위에서 그들이 사회, 더 나아가 정부와 법체제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냈던 ‘자연사’ 혹은 ‘이론적 역사’를 한층 더 파고든다. 그리고 여기서 루소와 스미스의 차이가 좀 더 분명히 드러난다. 혼트는 스미스가 특히 정부 및 정의justice의 기원에 대한 자연사적 설명에서 루소에게 동의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스미스는 흄이 제시한 정의의 자연사를 모델로 삼아 정부의 자연사를 쓰고자 했다. 정치가 인위적 구성물이라는 사실을 반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인위성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기원과 역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루소와 스미스는 바로 이 문제를 두고 견해를 달리했다. “핵심은 바로 자유에 관한 해석에 있었다. (……) 자유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그에 따라 정치사회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놓고 둘의 견해가 일치하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이들은 근대적인 자유와 법률의 역사를 서로 다르게 서술했으며, 이는 결국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로 이어졌다.” 이는 곧 법률과 법관 중 어느 쪽이 먼저 출현했는가에 대한 해석의 문제로 표출되었다. 《인간불평등기원론》 및 《언어기원론》에서 루소는 최초의 사회계약을 통해 법과 사법권이 만들어지고, 이후 인민이 권력자들에게 기만당하면서 법관과 사유재산이 생겨났으며, 그에 따라 불평등이 점점 더 심해지게 되었다는 식의 이론적 역사관을 제시한다. 그러나 사회계약론에 대한 흄의 비판을 충실히 되새겼던 스미스는 루소와 반대로, 사회가 현실적 필요 법관직을 창설했고, 이후 그들의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해 법이 등장했다고 보았다. 법관들 스스로가 해석하고 있다고 주장했던 바로 그 규칙들을 문서화하는 과정에서 법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또한 스미스 역시 사유재산과 불평등의 해악을 예리하게 인식했으나, 루소와 달리 적절한 정치제도를 설계한다면 상업사회 체제가 오히려 더 많은 평등과 물질적 복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혼트는 루소와 스미스가 구성한 정부의 역사가 추상적인 층위에 그치지 않고 물질문명의 발달 단계를 서술하는 역사적 모델로 연결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스미스의 4단계론(수렵/채집 → 목양/목축 → 농업 → 상업)을 통해 그 모델을 제시했고, 루소 역시 경제 발전의 3단계를 묘사함으로써 이 작업을 행했다.
혼트는 스미스의 삼분 구도 역사 서술(인류 초기 단계의 역사, 그리스와 로마를 중심으로 한 고대 유럽사, 근대유럽사)을 재구성함으로써 루소와 스미스 양자의 결정적인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선명히 보여주고자 한다. 《국부론》 제5권에서 발견되는 첫 번째 역사(초기 단계의 역사)에는 “사회 형성 및 권력자 등장의 진정한 기원이 전쟁에서 비롯되었다”(30쪽, 해제)고 보는 스미스의 관점이 잘 드러나 있다. 권력자들은 점차 부를 축적했으며, 사회가 목축 단계에 들어서면서(즉 동물을 재산으로 삼게 되고 이를 통해 막대한 부의 축적이 가능해지면서) 거대한 불평등이 나타났다. 스미스는 국가가 이처럼 “목축 단계에서 나타난 권위와 권력의 병합에” 기원을 둔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스미스가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오히려 불평등이 점차 감소한다는 진단을 내렸다는 사실이다. 이런 진단은 정확히 루소의 주장과 반대되는 것이었다. 스미스는 국가란 “애초에 (……) 잔인하도록 거대한 수준의 불평등에서 시작하는 것”이었고, 문명이 발전하면서 그 불평등이 감소하여 근대에는 사정이 더 나아졌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리고 권력 일반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한 단정적 주장을 내놓았는데, 바로 이것이 “상업이 자유를 창출한다는 그의 발상 배경에 놓여 있는 핵심 관념이었다”. 스미스는 상업이 자유를 창출할 수 있는 까닭으로 (부가 처음으로 축적된 시점에 비해) 갈수록 ‘부의 평등’을 향상시키는 역량을 꼽았다. 다른 한편 고대 유럽사를 다루는 두 번째 역사에서 관건은 고대 공화국(그리스, 로마)의 몰락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에 있었는데, 스미스는 그 원인으로 사치의 범람을 지목했다. 루소 역시 고대인들의 종말에 관한 한 이 명제가 옳다고 생각했지만, 두 사상가는 사치가 수행한 역사적 역할을 평가하는 데서 서로 다른 견해를 드러냈다.
상업사회의 정치경제: 사유재산, 불균형성장, 경쟁
루소가 “고대의 사치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교훈을 끌어낸 뒤 그 위에 탄탄한 실천의 관행을 확립하는” 사회를 건설하려 했던 것과 꽤나 유사하게, 스미스 역시 “사치나 인위적인 욕구에 관한 쾌락주의 이론을 완전히 지지하지는 않았다”. 두 사상가 모두 상업사회의 과도함에 대해 경계하고 비판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둘은 사치 및 사유재산의 문제와 관련해 사뭇 다른 정치적 전망을 제시했다. 루소에게 사치가 길들일 수 없는 대상이었다면, 스미스에게 사치는 길들여야 하는 대상이었다. 루소는 “개인의 필요를 넘어선 고정된 소유가 두 명 이상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을 만큼의 산물을 단 한 명이 취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는 논지로 사유재산을 비판한 반면, 스미스는 사치와 사유재산을 지위를 좇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위적 욕구로 바라보면서도(이 점에서는 루소의 관점을 받아들인 셈이다) 그것이 결국에는 “인류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미스가 보기에 지위 추구에 여념이 없는 문화, 그 거대한 기만은 사실상 인류 삶의 토대 자체였다. 사유재산을 근대 문명을 “부패라는 몰락의 비탈길”로 내몬 원인으로 지목했던 루소와 달리, 스미스는 생산성이 급증하는 한 그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생산성 증대가 이기적인 소유욕의 성장을 능가한다면” 오히려 사유재산이 사태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었다. 따라서 스미스는 루소가 사유재산의 대안으로 제시한 평등주의가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루소와 스미스는 (불)균형성장에 대해서도 상이한 인식을 견지했다. 루소는 인류 문명 발전에 핵심 역할을 한 야금술을 “치명적인 사고”라고 일컬었는데, 그것이 “토지에서 분리된 경제적 노력의 한 종류”인 공업을 발생시켰기 때문이었다. 즉 야금업자는 농업에 종사하지 않고(식량을 생산하지 않고) 자신의 제품을 식량과 교환할 수 있었고, 무한히 역동적이며 수요나 욕망이 있는 새로운 물건들을 끊임없이 생산해낼 수 있는 공업의 특성은 농업과 공업의 교역 조건에 비극적인 불균형을 초래했다. “점차 공업과 도시가 농업과 농촌 인구를 지배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반면 스미스는 유럽이 불균형하게 성장해왔다는 진단에 동의하면서도, 역설적으로 그 불균형이 유럽의 발전과 근대적 자유를 가능케 했다고 주장했다. 《국부론》 제3권에서 스미스는 불균형에 정면으로 맞서는 발본적인 개혁(페늘롱주의자·중농주의자) 대신 대세를 따르면서 “상황에 따라 특별히 조정된 정책”을 적용하여 점진적으로 균형을 회복하는 길을 모색하고자 했다.
책의 마지막에서 혼트는 루소와 스미스가 18세기 정치사상의 핵심 요소였던 경제적 대외 관계 및 국제정치와 관련한 사상을 각각 어떤 식으로 전개했는지 들여다본다. 스미스의 경우 《국부론》 제4권에서 유럽을 지배한 “국가 간 경제적·군사적 경쟁”에 대해 다룬다. 그는 더 많은 이익을 원하는 상인들과 군사 예산을 원하는 정부의 결탁이 국익이라는 명분으로 정당화되는 중상주의 체제를 강하게 비판했다. “국가의 경제 개입 전반을 부정한 그의 신조는 이 중상주의 체제에 대한 분노와 절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32쪽, 해제) 스미스는 과열된 경쟁으로 부패한 유럽을 비판하는 한편 개혁을 꿈꾸는 이들의 망상 역시 철저히 비판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역사는 복잡했고, 국가의 정치경제체계는 너무나 거대했다. 완벽한 체계란 존재한 적이 없었다. 만약 경제적·정치적 성공이 완벽한 체계가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었다면, 유럽은 결코 지금의 근대적 상태에 도달할 만큼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이와 같은 이론적인 오만함에 휩싸이는 개혁가가 아니라는 점에서는 루소 역시 비슷했다. “루소는 강력한 규제권력의 이점을 인지하면서도 그러한 치료법이 오히려 질병보다 더 나쁘다고 생각했다.” 루소가 경제에 간섭할 힘을 국가에 부여하려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힘은 사회적 조정을 위한 수단이었을 뿐 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루소는 세금을 사회적 조정의 도구로, 즉 사치 억제의 수단으로 사용하고자 했다.
그러나 대외무역 이론에서 두 사상가는 서로 다른 전망을 제시했다. 스미스가 외국 소비자들을 겨냥한 생산, 즉 해외시장 개척을 열광적으로 지지하며 “국제적 대결의 이론”을 구상했다. “강력한 수출산업의 존재가 영국의 역할 수행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러한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일정 수준의 경쟁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33쪽, 해제)고 본 것이다. 동시에 스미스에게 국제 대결이란 “애국심에서 비롯된 국가 간의 적개심을 인류애로 완화”할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이기도 했다. 물론 스미스는 수출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식민지 체제를 이용하는 식의 파멸적인 제국주의적 정책에는 강하게 반대했는데, 자유를 상실한 시장은 곧 퇴보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반면 루소는 스미스와 달리 국내의 소비를 겨냥한 ‘대결’ 개념을 제시했다. 그가 생각하는 균형성장이란 “모든 시민이 자신의 노동 속에 지니고 있는 신성한 재산권에 바탕을 둔 국내적 성장”이었다. 근본적으로 루소는 “폐쇄적 상업국가의 이론가”였다. 건전한 해외무역에는 반대하지 않았으나 국제적 경쟁에서 각국이 명예를 추구하는 상황이 이 매우 위험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런 식의 명예 추구가 “민족적 자존심이 격앙되고 통제 불가능한 상태가 되도록 부추기는 원천이 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비교’를 통해 배운다는 것
혼트의 비교 연구를 통해 우리는 루소와 스미스가 도달하게 된 답은 서로 다르지만, 그 둘 모두 상업사회에서 발생하는 긴장(국제적인 사회와 일국적인 사회 간의 긴장)과 그에 수반되는 사회심리학을 붙잡고 치열한 탐구를 이어나갔음을 보게 된다. 혼트의 엄밀한 평가대로, 루소와 스미스 모두 해당 문제에 대한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는 못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하게 상기해야 할 것은 이들이 실패했다는 사실이 아니다. 혼트는 이들이 ‘같은 지점’에서 실패했다는 데 핵심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 말은 곧 지금껏 상반된다고 여겨졌던 두 사상가가 꽤 많은 부분에서 지적 기반을 공유했고, 우리의 추정보다 훨씬 더 가깝게 맞닿아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혼트가 애초 이 강연을 통해 무엇을 의도했는지 선명히 알 수 있다. 근대성을 논할 때 여전히 가장 자주 언급되는 두 사상가, 그리고 그들의 책 《국부론》과 《사회계약론》이 어째서 계속 그런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지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독해를 통해 깨닫게 해주는 것. 너무 오래 이어져온 이 위대한 저작들에 대한 오해를 해소하는 것.
이에 덧붙여 혼트는 후대의 우리조차 루소와 스미스가 당대에 맞닥뜨렸던 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에서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말하자면 지금의 우리 역시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셈이다. “특히 국제적인 경쟁이 노골적으로 가시화하고 있는 지금, 혼트의 시선은 그 자신이 의도했던 것처럼 18세기 유럽만큼이나 오늘날 우리가 속한 세계의 난관 또한 정확히 관통하고 있다.” 혼트의 말마따나, “지금은 일견 상반되어 보이는 루소와 스미스의 사상 체계를 다시금 생각해보기에 좋은 시점이다. 우리는 결국 비교를 통해 배울 수밖에 없다”.
목 차
- 한국어판 해제
이슈트반 혼트와 상업사회의 지성사_이우창·김민철 ㆍ 7
1장. 상업적 사회성: 장-자크 루소 문제 ㆍ 41
2장. 상업적 사회성: 애덤 스미스 문제 ㆍ 89
3장. 정부의 역사: 법과 법관, 무엇이 먼저 나타났는가? ㆍ 133
4장. 정부의 역사: 공화국, 불평등 그리고 혁명? ㆍ 171
5장. 정치경제: 시장, 가계, 보이지 않는 손 ㆍ 211
6장. 정치경제: 민족주의, 경쟁, 전쟁 ㆍ 251
편집자 소개글 ㆍ 293
편집자의 말 ㆍ 312
옮긴이의 말 ㆍ 313
찾아보기 ㆍ 315
추 천 사
국가 간 경쟁과 갈등이 전방위에 걸쳐 예측 불가능하게 전개되고 있는 오늘날, 과거의 생각을 파 헤치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 혼트는 18세기 유럽 사상계를 대표하는 두 거장 루소와 스미스를 교차해 읽으며 이에 답하고자 한다. 《상업사회의 정치사상》은 국제정치와 국제경제를 바라보는 오늘날의 사고 근저에 놓인 지적 난관의 정체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밝힘으로써 논의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지성사의 전범이다.
《상업사회의 정치사상》은 왜 루소와 스미스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무역, 불평등, 경제 발전의 문제들을 이해하는 데 여전히 필수적인 나침반인지를 밝힌다. 혼트는 18세기 상업사회 논쟁을 발굴함으로써 정치와 경제 사이의 지속적인 긴장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 생생한 지적 향연을 한국 독자에게 처음으로 소개한 김민철의 번역은 중요한 학문적 공헌이다.
전 지구적 경쟁의 시대, 혼트의 학문은 정치를 경제적 삶과 연결지어 사유하는 데 필수적인 출발 점이다. 정치사상사가로서 혼트는 오늘날 이론적·정치적 논쟁의 구조를 만들어낸 범주들과 전 제들의 한계를 날카롭게 폭로하는 데 탁월한 실력을 발휘했다. 루소와 스미스를 비교한 그의 통 찰력 넘치는 분석은 지금도 고전으로서 빛을 발하고 있다.
《상업사회의 정치사상》은 최근 수십 년간 가장 독창적인 모습을 보여준 지성사가의 기념비적인 저작으로, 정치경제학의 핵심에 자리한 긴장을 탁월하게 조명한다. 프랑스 지성사 분야의 선도 적인 연구자가 번역한 이번 한국어판은 독자들에게 귀중한 자원이 될 것이다.
혼트는 동시대의 가장 탁월한 정치사상사 연구자로 평가받았으며, 과거가 현재를 제약하는 방식 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케임브리지학파의 접근법을 현대 정치에 유의미하게 재정립한 인물이었 다. 이 책은 그가 남긴 가장 창의적인 저작으로, 스미스와 루소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에 도전장을 던지는 문제작이다. 김민철의 번역은 단순한 번역을 넘어선 학문적 성취로서, 이 책은 자유국가, 상업사회, 무역의 질투라는 주제를 이해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필독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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