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적증거가 않남은 아방궁의 존재가능성이 끝없이 화자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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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단히 늦은 1970년대에야 발굴된 진시황릉이었고
그래서 개화기 시절 서양물 좀 먹었던 중국인 사상가들도
진시황릉과 아방궁에대해서 사마천이 전형적인 기록의 과장이나 뻥으로
가벼이 여겼던게 많았고
아예 서양인학자들은 황당무계한 것 취급하기도했으나
뒤늦게 결코 과장이라고 할수없는 규모의 진시황릉이 발굴되자
여론이 반전되었다.
아방궁은 진시황릉과 달리 항우가 확실하게 불태웠다는 기록이 있는만큼
애초에 물적 증거가 부실하게 남을 수 밖에 없던것도 커서
진시황릉의 규모를 바탕으로
정말로 백성들의 민생 ㅈ까고 일단 으리으리한 궁궐을 짓는것 자체는
충분히 하고도 남을 인성이라는게 중론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