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현대에야 그냥 석고상으로 유명하지만,
생전에는 해군과 육군 간의 유기적인 조합으로 상대방을 농락하는 대전략을 짜는 탑티어 군사 전략가였다.
로마군 자체가 워낙 육군문화가 강하기도 했고,
해군 자체가 베테랑 선원들의 숙련도가 요구되는 군종이라 기본적으로 해군 전통이 떨어지는 로마군은 운용법이 단순했다.
아예 집정관 쯤되면 해군지휘는 격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풍조가 있었을 정도.

로마군은 보통 우수한 육군조직력을 바탕으로 하나의 결정적인 회전에서 적들을 격파하는 전략을 선호했는데,
아그리파는 보급과 전략적인 연계를 중시해서 결정적인 회전 대신 리스크가 균등하게 분배된 전략목표 여러개를 설정해 군집단들에 나눠주고,
해군과 육군의 긴밀한 공조로 여러 방향에서 공세를 가하면서 전투에서 한번 패배했다고 전역 전체를 말아먹는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당대로서는 매우 현대적이고 파격적인 군사전략을 구사한 천재였다.

이런 전략적 선구안이 가장 빛을 발한게 바로 악티움 해전으로 아그리파는 안토니우스의 본대가 있는 북부 그리스에 집중하지 않고,
이탈리아 남부에서 바로 펠레폰네소스까지 직행하는 해군 원정대를 조직한 다음 아군 본대가 상륙하는 타이밍에 맞춰서 기습상륙을 했다.
덕분에 별다른 전투도 없이 실제 전장에서 한참 남쪽에 있는 메토네에 요새화된 해군기지를 구축하고,
이집트에서 들어오는 안토니우스의 보급선을 끊어먹어버리는 기염을 토한다.
이것 때문에 악티움 해전 당시에 안토니우스는 로마장군 답지 않게 육상전 한번 제대로 치루지도 못하고 급하게 해전을 치루고 도망친것.
악티움 해전은 그냥 보기에는 대단한 전투도 없이 안토니우스가 여자에 눈이 멀어 도망친것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후방은 이미 털려서 보급선이 허구한날 나포당하고 북쪽에서는 적 본대가 밀고내려오는 판국이라 탈출하는 수밖에 없었던거다.

이는 당장 아그리파를 아우구스투스 옆에 붙여놓은 카이사르와 비교해도 두드러지는데,
카이사르는 기적의 역전 전술가로 유명하지만 애초에 그런 빛나는 전술적 승리가 전략적 위기 때문에 필요했던거다.
파르살루스 전투는 디라키움 전투 당시에 무리하게 더 적은 수의 군대로 폼페이의 군대를 포위하려다가 좇망한 상황에서 폼페이의 군대가 회전을 거는 바람에 구사일생한거고,
이집트 원정 당시에는 아예 알렉산드리아에서 포위 당해 시가전을 강요받아 위기에 빠졌다가 외부에서 구원군이 와서 포위망이 풀린 덕분에 겨우 결정적인 회전 한방으로 상황을 역전시킬수 있었다.
어떻게보면 아그리파와는 상극인 스타일의 장군인 셈이였는데 그런데도 재능을 잘 알아보고 자기 양아들 옆에 붙여놓은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