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의 식인 사건과 한 미군 조종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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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일본 치치지마 섬에서 식인 사건이 일어났다.
고립된 상황에서 식량이 부족하여 식인을 하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었고,
레닌그라드 공방전과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독일과 소련 양 측 역시 식량이 없어 시체를 먹는 일들이 비일비재 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그런 유형의 식인이 아니었다.
이새끼가 바로 치치지마 섬 수비를 맡은 육군 중장 다치바나 요시오다.
치치지마 섬은 일본 본토 남쪽으로 1000km 떨어진 전략적 요충지로, 본토와 이오지마를 연결하는 중요 거점이었다.
한창 이오지마 섬을 두들겨 패고 있던 미군 입장에서는 육군 병력 9천여명, 해군 병력 6천여명의 혼성 부대가 지키고 있는 이 섬을 공격할 필요가 있었고, 항공기를 동원에 폭격을 진행했다.
한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군 장교로 임관하여 어벤저 뇌격기의 조종사가 된 조지 역시 이 전투에 참가하였다.
하지만 조지는 공습 도중 격추당하였고, 함께 출격한 동료들 역시 격추당하여 일본의 포로가 되었다.
조지는 운이 아주 좋게치치지마 섬 앞바다에서 표류하다가 간신히 해군 잠수함에 구조되었다.
동료들 중 전쟁 포로로 일본 본토에 보내진 1명을 제외하면 유일한 생존자였다.
그럼 포로가 된 조지의 동료 조종사들은?
섬 수비군 사령관인 이새끼의 명령(사유 : 술안주가 충분치 않음)에 따라 처형된 뒤 인육으로 요리되었다.
물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까지 강제로 맛보아야 했다.
미국은 종전 이후 낙하산으로 탈출한 해군 조종사들의 행방을 물었고, 일본군 참모는 포로 전원이 방공호에서 폭사당했다고 둘러댔지만, 미군은 귀환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이들이 식인행위를 자행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그 결과, 주요 주동자에게는 포로 살해, 시체 훼손 혐의가 적용되어 사형이 선고되었고 그 밖의 다수가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이새끼들의 식인 행위가 얼마나 쓰레기 짓이었는지, 다치바나 요시오는 같은 방에 수감되어있던 같은 일본군 출신들에게도
"니들이 사람새끼들이냐"면서 두들겨 맞았다고 한다.
8명의 군인들이 잔인하게 살해당했고, 살아남은건 오스카와 조지 둘 뿐이었다.
한편, 이 사건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조지 중위는 종전 후 고향으로 돌아가 여자친구인 바바라와 결혼을 하는데 성공하고,
예일대를 졸업한 뒤 UN 대사와 CIA 국장을 거치며
미합중국 제41대 대통령이 된다.
태평양전쟁 참전용사였던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중위는 이때문에 사적으로는 일본을 굉장히 싫어했다고 전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