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후삼국시대에서 유례한 지명이 많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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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후백제와 고려-신라간의 공산(현 팔공산) 전투가 여기서 벌어졌고
여기서 대패한 왕건이 도망치면서 여기저기에 이에 유례된 지명이 많은다.
팔공산
원래 이름은 공산이였다가
공산 전투에서 백제에 패배한 이후 신숭겸등의 여덞명의 장수가 죽었다고 팔공산으로 개명됨
지묘동
자신을 희생시켜 왕건을 피신시킨 신숭겸의 지혜까가 오묘하다하여 붙혀짐
무태동
도망치는와중에 태만하지 말라고해서 지어짐
해안, 불로동
해안은 도망중에 걱정에 얼굴이 드리우다 마침내 표정을 펼 수있어서 지어지고
불로동은 어른들은 없고 아이들만 마을에 남아있어서 지어짐
안지랑
저 세 설중에 하나
반야월, 안심
반야월은 도망치다가 하늘을 보니 한밤중(반야)에 달이 떠있었다하여 지어졌고
안심은 여기까지 왔으면 살았다고 안심해서 지어진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