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 설화들이 전해진 경위로 추측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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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 사후 그의 후손들은 잘먹고 잘 살아가고 있었는데
김유신의 증손자인 김융이 혜공왕 제위기인 770년에
반란에 연루되어 처형당하는 일이 생겨
집안의 가세가 많이 기울어졌음
그의 아들인 김유신의 고손자 김장청이 살아남긴 했지만
9년 후에 억울한 죽음이었다는것을 인정 받을 때까지
역적의 집안 소리를 듣고 말단직만 맡는 등
좋지 않은 대우를 많이 받아서
사과 받은 후 자신의 집안이
얼마나 쩔어줬는지 부각하기 위해서
직계조상인 김유신에 대한
용비어천가 수준의 찬양을 목적으로
[김유신행록]을 10권에 걸쳐서 집필함
"유신의 현손(玄孫)으로서 신라의 집사랑(執事郞)인 장청(長淸)이 행록(行錄) 10권을 지어 세상에 전해지고 있다.여기에는 만들어서 넣은 말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일부 삭제해 버리고 기록할 만한 것들을 취하여 전(傳)을 만들었다."
당연히 이 김유신행록은
허무맹랑한 기록들이 넘쳐나서
삼국사기를 집필한 김부식은
10권중에 상당수의 기록들은 쳐내서
김유신열전을 3권으로만 냄
김부식이 읽었다면 행록이
고려시대까지 전해졌다는건데
그럼 삼국유사를 집필한 일연도
여기서 괜찮겠다하는 것을
갖다가 써서 덕분에 일부 설화가
전해지게 된 것이 아닌가보고 있음
그러니까 후손이
"쒸익쒸익~~ 우리집안 원래 쩔어준다능!"
하면서 쓴게 박제된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