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제갈량과 사마의의 결정적인 차이
본문
제갈량
남만 정벌 과정에서
맹획을 칠종칠금하면서 완벽한 우위를 보여주고 결과적으로
남만인들이 스스로 복속하게 만들어 남만지역을 안정시키는 모습을 보여줌
사마의
공손연의 난 진압과정에서
공손연의 조건부 항복을 거절해버리고 그대로 진군해버린 다음
양평성에 있는 15세 이상 남자들을 모두 죽인 후 해골로 탑을 쌓음
오죽하면 후손인 동진의 명제 사마소가 이랬으니 진이 망하지 라고 한탄했을 정도
사실 더 큰 문제는
이때이전의 요동은
선비족과 고구려의 세력확장에 제동 거는 곳이었는데
(사실상 대무신왕 이후부터 동천왕까지 고구려 역사는 세력확장하려는 고구려와 막는 요동의 싸움임)
이 역할을 못하게 되서 고구려가 서안평과 낙랑먹는데 아무런 제지도 못하고
고구려와 모용선비의 각축장이 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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