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와 관련해서 잘못 알려진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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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영에서 복무한 조선 후기 대표적인 검객
야뇌 백동수.
무과에는 급제했으나
45세의 늦은 나이까지 관직에 뜻을 두지 않았는데
정조가 장용영을 열자 거기에 참가해 무예도보통지 저술에 참여했다.
헌데 당대 최강의 검객이라 불린 양반이 서얼출신이라고 해도
무관직에 늦게 오른 점 등으로 인해 요상한 이야기가
현대에 와서 하나 붙었는데
그건 바로...
원래 관직에 뜻이 없었던 백동수를
야뇌 백동수.
무과에는 급제했으나
45세의 늦은 나이까지 관직에 뜻을 두지 않았는데
정조가 장용영을 열자 거기에 참가해 무예도보통지 저술에 참여했다.
헌데 당대 최강의 검객이라 불린 양반이 서얼출신이라고 해도
무관직에 늦게 오른 점 등으로 인해 요상한 이야기가
현대에 와서 하나 붙었는데
그건 바로...
원래 관직에 뜻이 없었던 백동수를
정조가 1 대 1로 줘 패서 야 너 내 꺼해라
시전했다는 썰임.
(...)
그래서 늦은 나이에 어쩔 수 없이 관직에 강제로 올랐다는
식의 썰이 종종 보이는데
현대에서 창작된 이야기임.
정조 : 굳이 줘패지 않아도 왕명을 어케 거역하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