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외거노비여도 조선/로마시대의 솔거노비와 지위가 정반대였던 이유
본문
고려~조선시대 노비는 집안일하는 솔거노비와
주인집서 멀리 떨어진 논밭에서 농사짓고 소작료 비슷하게 납부하는(신공이라고도 부름)
외거노비가 있었는데
조선시대엔 외거노비에대한 실질적인 터치가 매우 약해서
※애초에 땅이 파편화되어있어서 이곳저곳 나뉘어서 외거노비도 흩어져 산다.
신공을 바친 나머지 몫은 외거노비가 개인적으로 모을수있는 등
하루종일 주인과 부대끼며 살며 오히려 잡일이 많은
솔거노비쪽이 더 ㅆ창이라고 평가 받는데
로마 시대엔 솔거노비가 외거노비보다
비교조차 할수없이 지위와 삶의 질, 대우가 높았는데
조선시대보다 솔거노비의 대우가 나았던건 아니고
로마의 외거노비=라티푼디움 농장 노예라서
평균수명 5년에 뒤지든말든 전쟁포로로 또 잡아오면 된다는 마인드로
사람 뒤지는거 신경을 안써서
이쪽은 외거노비=시한부 인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