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의 인척 하후연의 아들 하후패는 고평릉 사변으로 사마의가 정권을 장악하자 위협을 느끼고 촉한으로 망명한다. 하후패는 촉한에서 귀순용사 대접을 받았는데 특히 황제 유선은 하후패를 불러 자신의 아이가 하후씨의 외손자라 칭했다. 왜냐하면 장비는 하후연의 조카 하후씨를 납치해 아내로 삼았고(이에 대해선 하후연이 유비의 의형제 장비와 조카를 평범하게 정략결혼시켰는데 나중에 갈라서자 납치혼이라고 왜곡했다는 설이 있다) 장비와 하후씨 사이에 태어난 두 딸이 차례로 유선의 황후가 되었다. 즉 하후패는 유선의 처당숙 뻘이고, 당연히 황족 대우를 해줄만 했다.
그리고 촉한에서 외척들이 주로 맡던 거기장군에 임명되었는데 당시 촉한의 대장군 비의는 상징적인 직위였고 실제로는 녹상서사 겸 익주자사로 행정직이었다. 표기장군은 공석이었고 거기장군 다음 서열인 위장군은 강유였다. 즉 하후패는 갓 망명온 망명자가 군부의 실질적인 수장이 된 것이다.
이전 정군산 전투에서 하후연이 황충에게 전사하자 장비의 아내 하후씨는 청하여 하후연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렀다. 즉 하후패의 아버지 하후연의 무덤은 촉한에 있었다. 기록은 없으나 하후패는 하후연의 무덤에 참배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