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에 가려진 한국사에서 가장 요절한 군주 창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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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우왕이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쫓겨난 후 조민수 등이 이성계를 견제하기 위해서 8살밖에 안 된 애를 왕으로 올렸는데, 신돈의 자식이라는 등 정통성도 부정당하며 폐위된 뒤 유배지였던 강화도에서 고작 9살의 나이에 참수되었음.
그나마 단종은 정통성이 있었기에 무덤에 안장이라도 됐고, 사육신과 생육신 같은 사람들이라도 있었지만 창왕은 이미 망해가는 국가의 군주였던데다 조선이 건국되면서 정통성까지 부정당했기 때문에 한국사에서 가장 어린 나이에 죽은 왕이 되었음에도 오랫동안 동정을 못 받았고 무덤조차도 안 남아 있다고 함. 그리고 창왕 다음 왕이자 고려의 마지막 왕이었던 공양왕도 왕씨 몰살되면서 여타 한국사 마지막 군주들과 비교해도 가장 비참하게 죽었음.
다만 후세에 역사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우왕하고 창왕이 신돈의 핏줄이라는 건 이성계 일파들이 선양, 양위를 위해 내세운 거였고 실제로는 고려 왕실을 이을 정통성이 있었던 왕이라고 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