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청나라때 있었던 영국의 자존심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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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대 중국이 청나라였을 때
청의 반개화파였던 무술집단 의화단은
단순히 개화를 반대하는걸 넘어
중국 내 무고한 기독교 신자들을 박해하고
양인들을 잔혹하게 살해하거나, 성범죄를 저지르는 등 폭주했는데
이에 서양 강대국들은 청나라에게
"만행을 저지르는 의화단의 진압" 을 요청했으나
청은 의화단의 편을 들며 강대국에게 전쟁을 선포,
의화단 역시 "부청멸양(청나라를 도와 서양세력을 멸한다)" 을 내세움
하지만 이빨빠진 청은
영국이 주도한 열강 연합군을 이길 수 없었고
전쟁 선포 2개월만에 청은 수도 베이징이 함락당하게 됨,
사실 이 연합군에는 대한제국군에도 참전요청이 왔지만
한국은 당시 국경에 쳐들어온 의화단과 싸우느라 여유가 없었고
여유가 좀 생겼을 땐 이미 의화단과 청나라가 패배한 뒤였음
전쟁에서 패배한 모든 나라가 그렇듯
청은 막대한 배상금을 열강들에게 지불하게 되었고
열강들은 중국을 반 식민지화 하며 세력을 키우게 되면서
결국 세계대전의 불씨가 되기도 했는데
의화단 전쟁 당시 가장 유명한 사진이 바로
영국을 주도로한 8개 연합군의 대표 군인들의 단체사진.
사실 이 사진은 일종의 영국 프로파간다 사진으로
연합군의 대표였던 영국은 각국에 사진 찍을 병사 한명씩을 보내달라 요청할 때
특정 높이의 신장을 조건으로 내걸어
제일 왼쪽의 영국 군인이 가장 큰 키를,
미국, 영국령 호주/인도,
독일,프랑스,오스트리아-헝가리,이탈리아
일본 순서로 군인들의 키를 배치했는데
영국과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
당시 영국의 식민지인 호주와 인도가 가장 큰 키를
유럽 내 다른 나라들이 그 다음,
그리고 가장 많은 병사가 출전한 일본이 가장 작은 키를 보이며
"대영제국의 우월성" 을 강조함
다만 미국은 분명 영국군인보다 작은 키로 보내달라고 들었음에도
무시하고 가장 큰 병사를 보냈고
영국은 이미 독립한 미국에게 불평도 못하고
그냥 영국 군인에게 위로 높은 모자를 씌워서 자존심을 세웠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