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이 중공군 상대로 생각보다 고전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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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미군은 급격한 전후군축을 실시하여 병력이 88% 감소한 상태였고
이상태에서 한국 전선이 급해지자
제 1기병사단장 호버트 게이 소장의 측근이었던 윌리엄 웨스트 중령에 따르면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 도교 미군부대에 근무하던 장교들은
군법회의에 회부될 사병들이 너무 많아 다른 업무를 거의 보지 못할 지경이었다.
결국 중죄를 짓고 수갑을 찬 채 본토로 이송되려던 자들조차도
한국전쟁에 참전하면 범죄 기록 자체를 말소시켜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 병력이 급해서 중범죄자들도 끌고옴
한편 본토에서는 이미 복무 중이던 군인들은 보직에 관계없이
무조건 전투부대로 보직이 변경되어 충분한 훈련도 발지 못하고 한국으로 급파되었다.
전쟁 초반에 참전용사로 활약했던 프랭크 무노즈 대위는 당시 상황에 대해 미렇게 회상했다.
"마치 사방에서 진공청소기를 들고 우리를 닥치는 대로 빨아들이는 것만 같았습니다.
행정병, 의무병, 보급계 할 것 없미 죄다 전쟁터로 끌고 가더구만요."
-> 병과 무시하고 다 전투보직으로 변경해서 끌고옴
처음에는 한국으로 가는 배에 이들을 태우기 전 6주간 훈련을 실시했지만
곧 10일로 줄어들었고, 급기야는 3일간의 속성 훈련으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북괴군이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오자 3일간의 훈련도 실시하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부산항에 도착한 미군 신병들은 무기를 지급발자마자, 소총이나 기관총에 묻은 구리스를 수입할 여유도 없이 낙동강으로 끌려갔다.
-> 그보다 더 뒤에는 급해서 신병훈련 3일하고 투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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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핼버스탬의 콜디스트 윈터 강력 추천함
어쨌든 이렇게 미군은 전후군축의 여파와 새 전쟁에 대한 부담으로 제 역량이 발휘되지 못하는 상태에서
허겁지겁 병력을 충원해야만 하는 상황이었음
중공군의 참전 시기까지 고작 몇달 사이에 다 회복할 수준이 아니었고 이 묘사보다 그나마 조금 나아졌다 뿐이었는데
하필 상대는 손꼽히는 명장인 팽덕회와 국공내전을 겪고 온 베테랑들이었고
미군은 자기 역량도 회복이 안된 상황에 그가 이끄는 중공군의 전력을 오판하기까지 해서 그만...
하지만 훗날 지들 최고의 명장을 지들이 조리돌림하게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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